나의 수도생활 신조는 우리 수도공동체의 회가 가사 중 한 대목이다. 『성삼위 한마음에 고이 모시고, 영원한 도움아래 키우는 사랑, 깨끗이 나를 살라 향불 올리며, 아쉬운 모든 이의 모든 것 되리』. 이 가사는 돌아가신 최민순 신부님이 쓰셨다. 그 자체로 완벽하여 2절을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깨끗이 나를 살라」라는 대목을 나는 나의 수도생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나를 어떻게 깨끗이 살라 바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이 말의 뜻을 다 알아 들었을 때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깨끗이 살라 바친 때일 것이라는 것 밖에는…
한때 나는 나를 바치는 것이 「내가 무엇을 이루거나 만들어 바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든 그 나름대로 완벽하게 잘 해야 하느님께서 나를 반기신다고 믿었다. 시행착오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마다 나는 하느님을 욕되게 했다는 죄책감과 하느님으로부터 덜 사랑받게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던 일을 못 끝낸 나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려워 기도하며 분별을 구했다. 기도 중에 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이지 「내가 하는 그 무엇」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그분께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것도 「나」와 「이 세상 모든 것」의 존재함에 나는 아무런 기여도 한 적이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알아듣게 된 것이다. 그분이 뜻하신 완성과 나의 완성은 다르다는 것도…. 창조주이신 그분의 사랑이 무상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 자신과 이웃과 세상의 참 가치를 제대로 매김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있음 자체가 바로 그분의 사랑임을 안 후에 나는 더이상 「나와 남이 바라는 나」가 되려는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너와 주변을 사랑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현재 나의 살라 바침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일에 아낌없이 나를 내어주는 생활로 실천되고 있다. 자주 부딪히는 한계 상황들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깨끗이 나를 살라」바치려는 원의를 심어주신 분도, 이 원의를 이루어가고 계신 분도 하느님이심을 믿기에 나는 이 생활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