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모였던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서는 중상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아이들이래요』.
『그 아이들이 묵고 있는 호텔 주변에 우리 청소년들이 밤새도록 서성거렸고 호텔측에서 내세운 경비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느라 진땀을 뺏대요. 글쎄』.
『그 아이들이 코를 풀어서 내버린 휴지라도 먼저 주으려고 아우성이고, 주어서는 가슴속에 집어넣고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더래요』.
『아이고, 공연장에서 눈동자가 풀린 아이들이 울고 괴성을 지르며 아우성 치는 모습은 정말 못봐줄 정도였다구요』.
위의 말들은 지난봄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청소년 팝그룹이 내한 공연을 가졌을 때 일어난 사건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그것은 정말 사건이었다.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모두들 한마디씩 했듯이 청소년 교육 문제가 이제는 심각하다 못해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들 말한 그대로의 사건이었다.
교육은 네가지 측면에서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가정교육이다. 부모 형제들로부터 삶의 기초를 배우는 교육의 첫 단계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듯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단계라고 본다.
두번째로는 종교교육이다. 인생의 근본을 깨달아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단계이다. 짐승만도 못하다고들 한탄하는 인간들의 교육 정도는 바로 이 단계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세번째로는 사회교육이다. 이웃 사촌이나 어른들로부터 받게되는 이 교육은 보다 넓은 세상, 보다 큰 가치들을 찾게 하여 준다.
마지막으로 학교교육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세가지 측면의 교육 내용들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여 주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내는 분야이다.
이 네가지 측면의 교육은 어느것 한가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1, 2, 3단계의 교육은 완전히 무시되고 학교 교육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학교 성적은 좋게받고 있지만 속빈 강정식의 모습을 갖출 수 밖에 없다. 그런 모습의 인간을 보고 옛 어른들은 아비없는 자식들이란 말로 아비도 함께 나무랐다. 오늘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은 있는데 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