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그리스도교에서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교의 용화세계 (龍華世界) 정토신앙 (淨土信仰) 이나 동양의 개벽사상 (開闢思想) 등 타종교에서도 강조되는 신앙이다.
92년 종말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상 종말의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하는 시한부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도 살며 본 바와 같이, 시한부 종말론은 직장과 학업 및 재산의 포기, 가출과 이혼을 포함한 가정파탄, 열광성과 집단 히스테리현상 등 수 많은 부수적인 문제들을 수반한다.
시한부 종말론은 최근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한국사회에서만 제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자주 대두 되곤 하였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안식교의 발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밀러 (Willia m Miller, 1782~1849) 는 다니엘서 8. 14을 들어 예수께서 1843년 8월 21일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추종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안식교에서는 1884년 10월 22일에 세상 종말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1878년에 세상종말이 온다고 강조하였다가 그것이 불발로 그치자 다시 1881년, 1914년, 1918년, 1925년, 1975년 10월 등으로 여러 차례 수정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시한부 말세론은 한국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되곤 하였다. 최근의 경우만 하더라도, 용화교에서는 64년10월1일에 세상 종말이 닥칠 것이라고 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으며 동방교에서는 65년8월15일을 장막성전에서는 69년11월1일을, 일월산 기도원에서는 71년8월15일을, 팔영산 기도원에서는 72년6월25일을, 천국 복음전도회에서는 73년11월10일 오전10시를, 중앙예루살렘교회에서는 75년8월을,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는 88년10월을, 예수교샛별남원교회에서는 89년12월22일을 세계일주평화국에서는 89년12월20일부터 29일 사이를,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들림 교회에서는 90년5월 둘째 주를 세상 종말의 시기라고 예언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들은 모두가 빗나가고 말았으며, 그 결과 이러한 예언을 믿고 직장과 학업 재산 가정들을 포기하였던 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시한부 종말론이 들어맞지 않을경우 그것을 주장하던 종단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을 살펴보는 것은 92년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단들의 미래를 전망하는 단초가 될수 있을 것이다.
시한부 종말을 예언하였던 종단들의 상당수가 그것이 들어맞지 않을 경우 소명될 것은 자명하다. 이들 종단의 신자들은 모두가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여 자신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하였던 자들이기 때문에 그 예언이 적중하지 않을 경우 예전과 같은 신앙을 계속 유지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종단들이 모두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종단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예언한 내용이 실패로 끝날 경우 그것을 변명하거나 수정함으로써 종단의 위기를 극복코자 시도한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세상 종말에만 대비하였던 신자들도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사회적 지위나 위치로 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단 지도자들이 어떠한 변명과 수정을 하더라도 계속 그들을 추종하는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계속 그 종단에 머무르면서 종단 지도자들의 변명과 수정에 그대로 맹종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하여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였던 많은 종단들이 예언 실패 후 위축을 나타냈지만 소멸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종단 지도자들이 예언 실패에 대응하는 방법은 주로 두가지이다. 그 하나는 교리에 수정을 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1878년 세상 종말이 오고 그 때에는 자기 신도들이 영체로 변화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가 그것이 들어맞지 않게 되자, 그 예언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이름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혜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변명하였으며, 1881년 종말설이 실패하자 이제부터 죽는 성도들은 그 순간 즉시 영체로 변화된다고 하였고, 1914년 종말설이 불발로 끝나자 이 시기는 말세의 끝날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정정하였으며, 1918년 종말설의 실패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하늘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심판을 위해 성전에 들어갔다고 변명하였고, 1925년의 실패에 관해서는 왕국의 하늘 보좌가 확립되고 예수께서 하늘나라 정부의 왕으로 취임하셨다고 강변하였으며, 1975년 종말설의 실패에 관해서는 아담의 창조를 시점으로 말세의 시간을 측정했던것은 잘못이며 하와의 창조를 시점으로 말세의 시기를 계산해야 한다고 변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대응방법은 종단 지도자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예언했던 시기가 심판의 시기였지만, 사람들이 불신하므로 자신이 하느님께 간청하여 그 시기를 연장하였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예언했던 시기가 심판의 시기였지만, 사람들이 불신하므로 자신이 하느님께 간청하여 그 시기를 연장하였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도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참겠다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주여 참으소서』하고 기도하였더니 주님께서 회개의 기간을 언제까지 연장시켜 주셨다고 변명한다. 세상 종말의 시간을 계속 연장시키는 종단의 예로써는 세계일주평화국을 들 수 있다. 이 종단의 교주인 양도천목사는 89년 12월 20일부터 29일 사이에 최후 심판이 닥친다고 예언하였다가 그것이 들어맞지 않게 되자, 다시 90년 1월 23일부터 25일 사이로, 90년 10월 22일로, 91년 2월 8일부터 17일 사이로, 91년 6월 9일로, 91년 9월 14일로, 91년12월 10일에서 13일 사이로, 다시 91년 12월 13일로, 92년 1월 23일로 계속 변경시켜 왔다.
92년 종말론자들의 예언 역시 불발로 끝난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예언 중 이미 불발로 끝난 예언들도 있다. 예를 들면, 92년 종말설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활발히 주장하는 다미선교회에서는 북한이 92년 4월 28일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들어맞지 않자, 다시 5월 초에 북한의 문이 열릴 것이며, 그때에 자신들이 말하는「소년 선지자」진 모군이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수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예언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 마라나타선교회에서는 4월 28일의 북한개방 예언이 들어맞지 않게되자, 4월 28일 남북한교류협력분야 부문별 공동위원회가 결성된 사실을 들어 북한의 문호가 개방되었다고 강변하고있다.
92년 종말설이 불발로 끝날 경우, 이들 종단들이 교리수정이나 그밖의 방법을 통해 종단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신자들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잃어버린 직장과 재산, 학업 중단에 따른 손실, 가정파탄 등 그들이 겪은 손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피해당사자인 신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한부 종말설에 대한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2년 종말설」의 실장 <8ㆍ끝> 전망
92년 종말예언 불발분명
추종자들 피해 보상대책없어, 각자 경계해야
발행일1992-08-23 [제1818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