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깊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혈기왕성하고 자신만만하던 젊음이 조금은 고개 숙이자 내면생활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일에 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에 숨쉬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던 날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나는 나이 먹는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를 알아가고 너를 알아가는 이 시기가 너무나 고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일을 해도 안해도 제 궤도를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얼마나 멋진 일을 해내는가가 그리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일하는 능력, 그의 학력 그의 외모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가 지닌 덕성과 평온함이 훨씬 소중하게 보이는 대인관계를 맺으며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이 열렸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추억으로 산다」라는 소설도 있지만 수도자는 아니 사람은 내면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참 행복함을 느낀다.
20대 모든 힘이 꽃피고 사람들의 관심이 내게 쏟아질 때 나는 무척 행복했었다. 그 행복이 과중하다고 느껴질 때 50대이던 어느 선교사 신부님께 이런 질문을 했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과 나의 열정으로 행복한데 나이가 들어 힘도 없고 누구에게도 잊혀지면 무슨 재미로 살지요?』
신부님은『삶의 맛으로 산다』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다. 수도자가 무슨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느냐고 꾸짖지 않으시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한 대답을 해주셨을 때 난 그 대답을 간직했었다.
사실 지금 난 그 삶의 맛을 조금씩 맛들여가는 중이다.
너무 달콤하거나 짜릿한 강렬한 맛이 아니라 쌀과 자처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지닌 삶의 맛에 맛들여가는 중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 그건 기쁨이었다. 자신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놀라게 됙고 타인에게서 이루어지는 은총의 역사를 질투심 없이 기뻐하게 된다는 것을 배우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나이값을 하며 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