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 오신 아버님인데 독립운동을 위해 여러 이름으로 바꿔 불렀던 이름 때문에 독립운동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올해 78세의 곽성영 (아녜스ㆍ동작동본당) 할머니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 세상에 알려질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을 따라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한후 중국에서 58년간을 살다가 6ㆍ25때 월남한 남동생의 초청으로 영구히 귀국하게된 곽성영 할머니.
증조부때부터 천주교를 믿어왔던 까닭에 유아세례를 받았던 그는 평생 동정으로 살면서 부친의 독립운동과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왔다.
그러나 곽씨는 귀국과 동시에 국가보훈처를 방문, 부친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리고 국가 유공자로서의 마땅한 권리를 찾고자 했지만 어릴때 부친과 헤어진 동생이 월남해서 다시 만든 호적에 부친의 이름을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국가유공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곽씨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부친이 천주교 신자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기록된 교회사 관련 자료와 평안남도 도지사 사실증명 등 많은 관계서류를 보훈처에 제출했지만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일제때 독립투사들이 우리집을 찾아와 아버지가 모금한 독립자금을 받아가는 것을 자주 보았고 아버지도 그들을 따라 몇개월씩 집을 비우기도 했었다』는 곽성영 할머니는 그러한 부친이 독립유공자의 명단에 오르지 못하고 영원히 잊혀지기에는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닐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곽씨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돼 동사무소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살고 있는 형편이지만 곽씨의 가장 큰 소망은 정부로부터 부친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아 부친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데 있다.
특히 곽씨 자신도 1944년 중국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미군첩자로 몰려 공산치하에서 7년간의 감옥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후 강제노역 등 수많은 고통을 받기도 했다.
한편 곽씨는 자신의 어려운 생활가운데서도 성지연구원, 꽃동네회, 작은예수회 등의 회원으로 가입,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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