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종말설의 확산은 한국사회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은 물론, 구라파나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논란과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미 국내에도 보도되었지만, 필리핀에서도 92년 종말설은 전국을 휩쓸면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바콜로드교구의 까밀로 그레고리오 주교와 시부대교구의 아킬레스 다카이 몬시뇰은 신자들에게 92년 종말설외 허구와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92년 종말설의 확산이 세계적인 현상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보다 큰 문제로 제기되는 지역은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 비그리스도교 문화권보다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그 어떤 사회보다도 92년 종말설의 확산과 그에 따른 폐해가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의 범란은 세기가 바뀔때 마다 등장하는 세기말적 증후군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 때와 20세기로 넘어가 때를 전후하여 예수재림사상과 천년왕국신앙이 크게 부각되면서 여러 형태의 시한부 종말론들이 대두되곤 하였다.
이러한 시한부 종말론들은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신흥종교의 발생으로 귀착되고 맡았지만, 당시로서는 기성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크게 위협하면서 많은 사회적 물의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92년 종말설의 확산은 20세기로부터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전환과정, 특히 1천년 단위의 시대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유행병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매혹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흥종교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고통을 받고 있는자들이다. 최근 거리에서 92년 종말을 알리는 전단 등을 배포하면서 전도활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그 대부분이 대학입시에 짓눌려 있는 고등학생이나 재수생, 불안정하거나 저임금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사업실패자,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병자,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자녀가 배우자가 없는 자, 타인으로부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자,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여 아직 정착된 삶을 갖지 못하는 자 등인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단절된 생활을 하는 자나, 자신의 생각과 일에만 골몰하는 자 등과 같이 편협된 태도를 갖거나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한 자들도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빠지는 자들이다.
종교사회학자들이나 종교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시한부 종말론의 확산에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이들이 갖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불만이 낡은 사회질서는 곧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며, 그때에는 자신들이 구원을 받아 지금과는 다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시한부 종말론의 약속에 쉽게 매혹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종말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이 끝장났다는 것을 뜻한다. 천년왕국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과 불만에 대한 보상심리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7년 대환난이 닥치고 그때에는 현존체제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던 자들이 멸망하게 될것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가진자」들에 대한 원망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시한부 종말론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바로 현실세계의 종말을 기대하는 종말을 기대하는 잠재적 심리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대의 징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른 어떤 사회에서 보다도 한국사회에92년 종말설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얼마나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얼마나「병든 사회」인가 하는점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수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빠지는 자들은 거의 모두가 기성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들은 애당초 종교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혹설에 쉽게 매혹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성종교에서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거나 소외된 생활을 하던 자들이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동요받는다.
이러한 점에서 시한부 종말론의 확산에는 기성종교가 짊어져야 할 책임 또한 크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책임은 바로 교리교육의 부족, 공동체의식과 공동체생활의 결여,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부족, 시대의 징표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편,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배경과 심리적 특성은 이들 집단의 열광성과 광기 (狂氣) 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기존사회와 기성종교로 부터 이중의 소외와 상처를 받고있는 자들로 구성된 이들 집단의 구조적 성격은 이들의 집단응집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에 대한 희구는 학업 직업 재산 가정등 현실생활 전체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이들의 욕구 불만과 박탈감은 각종의 교육과 활동을 통해 집단화되고 의식화 (儀式化) 됨으로써 광기를 유발시키게 마련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킬 희생양을 찾게 하거나, 자신들의 욕구불만 처리에 장애가 된다고 인식되는 대상에 대해 공격적인 행동을 자행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신흥종교, 그 중에서도 특히 시한부 종말론을 강조하는 신흥종교 집단에서 집단파괴, 집단폭력, 집단자살, 성적문란, 집단히스테리 현상 등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들의 독특한 집단구조나 집단심리와도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78년, 남미의 가이아나에서「인민사원」신자들 9백 여명이 집단으로 자살한 사건도 시한부 종말예언의 실패와 그에 따른 집단적 광기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아, 92년 중에 휴거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92년 종말론자들이 어떠한 집단 심리와 집단행동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점은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92년 종말설」의 실상 <7> 시한부 종말론 그 의미와 평가
집단파괴ㆍ자살ㆍ성문란우려
종말설 확산은 사회모순 심각성 반영
기성종교 교육부족ㆍ무관심 등 책임커
발행일1992-08-16 [제1817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