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을 일구어 열종류도 넘는 채소들을 심어놓고 자라나는 모습을 즐길 여유도 없이 억센 풀들의 드셈이 우리의 손길을 늘 바쁘게 한다. 괜한 고생 하지말고 제초제를 뿌리라고 동네분들이 권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에서 위대한 것을 이끌어 낼수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음을 모르시는 말씀이리라. 누룩이나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것에서 시작되는 하느님나라 건설의 사업이 아니던가.
밭 곳곳엔 뿌리지도 심지도 않은 쇠비름, 바랭이가 거센 욕망으로 땅 따먹기나 하듯 뻣어가고 있고, 채소들은 여린 몸통으로 무지한 야망앞에 서 있는 순한 모습이 측은 하기까지하다. 어느새 잡초들의 몰염치한 정복욕도 한풀꺾이어 수북이 쌓인 퇴비 더미로 보내어지고 새로이 위엄을 갖춘 땅과의 대면! 숨 쉴수 있는 이 공간을 마련해주는 손실들에서 재창조 질서에 참여한 기쁨을 만끽한다. 땅아, 호미야! 주님을 찬미하고, 퇴비가 될풀들아! 너희도 주님을 찬미하라.
뙤약별 아래 쉼 없이 몇시간을 일하다 보면 등도 따갑고 호미질하는 오른팔도, 뽑아 당기는 왼팔도, 다리까지도 떨려온다. 그러니 힘에 겨워 괴로워도, 병에 시달려도 일을 놓을 수 없는 딱하고 지친 품 노동자 아주머니들을 만나는 곳이 바로 이 뜨거운 속에서이며 그들과 한마음된 변화를 체험하는 시간이 바로 이 고단한 순간인 것이다.
「일 많이 했다」는 동네분들의 격려 또한 일일이 방문을 하여 맺는 친교 보다도 더욱 일치된 마음을 나누는 때이다. 그뿐이랴, 온마음 열어놓고 이 가엾은 이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귀기울이고 계시는 주님도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드디어 땅에 주저않아 휴식을 취하며 마시는 얼음물. 와! 이 세상 그 어느 맛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하나같이 길게 물구슬 보석을 빠알간 얼굴에 드리우고 가슴속까지 시원함으로 채운 뒤의 그 얼굴은 온 몸으로 웃는 웃음꼿 처럼 보인다. 마치 이하찮은 노고의 열매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이룬듯 하느님 나라의 화려함을 엿보는것 같다.
오늘도 심신의 단련장에서 변화를 체험케한 노고와 쉼을 거룩한 것으로 축복해 주신 하느님! 가난한 노동자들도 우리와 함께 휴식을 갖게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