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대신학교 교수로 봉직해온 서울대교구 허창덕(치로) 신부가 7월15일 오전8시25분경 강남성모병원에서 위암으로 선종했다. 향년74세.
영결미사는 7월17일 오전 11시 명동대성당에서 성직ㆍ수도자, 평신도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거행됐다.
김추기경은 이날 미사강론을 통해 『허신부의 생애는 수도자와 같았다』고 전체『허신부는 결코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일생을 사제양성을 위해 자신을 죽이신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추기경은 또한『허신부는 수업중에 엄한 선생으로 불같은 성미를 자랑했지만 항상 따스한 부성으로 신학생을 돌봐온 겸손하신 분이었다』면서『이제 신학교 강단에 서계신 그분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프다』고 애도했다.
허창덕 신부는 1919년6월 만주 간도 용점에서 태어나 1945년9월 덕원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서품 됐다.
연길교구 팔도구본당에서 첫 사목생활을 시작한 허신부는 공산당에게 모진 고문과 박해를 겪고 남하 1948년7월부터 성신중고등학교(소식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허신부는 1959년3월 가톨릭대학 교수로 부임, 지금까지 신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쳐왔다.
사제양성을 위해 헌신해온 허창덕 신부의 소대신학교 교수생활은 무려44년간 후배양성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그의 노고와 희생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 허신부는 1976년 국민훈장동백장을, 1948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허신부는 또한 신학생교육뿐 아니라 일평생 숙원사업으로 1972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홀로 라한대사전 편찬작업에 몰두해왔다.
교회전례와 신학공부에 있어 절대 필요한「라한대사전」편찬작업에 대한교계 학계의 기대는 대단했다. 허신부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온 라한대사전 편찬작업을 완성치 못하고 운명함으로써 많은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허신부의 유해는 서울대교구 용인 공원묘지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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