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아첨하는 사람이다. 어른에게 잘 보이려고 예쁜 짓하는 사람, 제가 한일을 은근히든 노골적이든 자랑하는 사람, 누가 보는 데서 괜찮은 일 하는 사람, 앞에서는 천사처럼 말하고 뒤에서는 괴물같이 행동하는 사람… 모두 아첨하는 목록에 들어간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들어보라고 한다면 요한사가가 말한대로 책 한권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할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인간다운 인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랄것이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느 부류에 들어가는가?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평가 받고 싶었다. 실제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지간에
『수녀님은 참 강해. 용감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야』하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으쓱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내가 어느 부류에 들어가는지 스스로 찾아보려고한 시점에서는 「강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판단을 내릴수가 없었다. 자기자신을 자기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감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도생활을 15년 넘게 하면서 난 어른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사랑받았고 인정받으며 살았다. 좋은 일이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나의 삶의 철학대로 진리를 명백하게 거스리지 않으면 함께 하자는 신조를 잘 실천했다는 표지도 되니까.
그런데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그것이 씁쓸하게 느껴지니 어인 일일까?
좋은게 좋은거라는 허울안에서 약하고 소리작은 자매들에게 입혔던 상처가 커다랗게 부각되어오는건 슨 일일까?
다수의 의견, 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난 의견들은 여지없이 밀어놓고 좋은 게 좋은거라는 소리를 힘 있게 했던 나의 삶이야말로 아첨하는 삶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아첨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때로 공동체를 거슬러 다수의 의견을 거슬러 올바른 소리를 내야 했을 때조차 제몫을 못했던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진정 용감하고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인지?
진실을 진실대로 말할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