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반갑습니다. 보세요. 이 아기는 신부님이 주신 거예요』환히 웃으며 젊은 부인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88년도 미국 캘리포니아「벨리」한인본당의 사순절 피정때의 일이라면서 옆의 봉사자가 설명을 하여 주어서 다행히 이해가 되었다.
전년도 이곳 피정때 이 부인이 면담 및 고해성사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자기의 고뇌와 갈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분의 긴 사연을 다 들었다.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는중에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제가 그를 도울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그리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이 하고저 하는 말을 하고 행위를 하도록 은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떠오른 몇가지 질문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끝으로 기도하면서 따뜻하게 돌려보냈고 그날 저녁에도 계속 기도하였다.
나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믿고 그대로 실천하여 연달아 불구아기를 낳고 공포에 떨던 삶에서 외아들 부인으로서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건강한 사내 아기를 갖는 기쁨에 그 부인은 하느님과 교회에 감사하는 생활을 지금도 계속하리라 믿는다.
이것은 좀 극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나의 사목생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성령의 은사체험을 강렬하게 하면서부터 사제직안에 내포된「하느님 사랑」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점진적으로 깨달아 더욱 더 사제직을 존경하고 사랑하면서『사람에게 이런 사제직을,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이 고귀한 품위』를 주신 대사제이신 예수님께 한없는 찬미를 영원히 드리고 싶다.
은사체험을 하면서 나의 사제생활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긍정적, 부정적인 변화 와중에서 깊이 생각한것중에 특히 이 세대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마땅한 지도자와 좋은 서적의 절대부족 현상이며, 교계제도적 차원에서의 육성, 선도적인 관여의 미흡함이다. 『신부님! 신부님이 어떻게 하시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나를 존경하고 세례를 받았던 모 교수의 질문이고 걱정하는 말이었다. 내가 성령쇄신에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제발 그것만은 삼가해달라』는 주문이었다.
한국의 성령쇄신안에 토착회되는 과정중에 민속신앙과 무속적인 요인이 너무나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고 성령신심의 본질보다 부수적인것에 더 진지한 현실앞에 부닥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신부님, 제가 마귀가 붙어있는데 떼어 주십시오』. 한주간에도 이러한 몇 명 신자의 성화에 계속 시달려야 하는가? 왜?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되었는가?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