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 (天燈山) 박달재 아래서 논 네마지기 발 네마지기를 소작하며 6만원짜리 월셋방에 가는 사람.
언뜻 산간오지의 가난한 한 농가의 일일것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안동교구의 사목국장을 지낸 조창래 신부(빈첸시오ㆍ41세)이다.
15년만에 받은 안식년 휴가를 농투산이들 틈에서 난생처음 지어보는 농사로 보내고 있는 조신부는 지난 5년간 사목국장으로 일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농촌의 실상을 많이 보아왔다.
사목국장 재임시 그는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농촌과 공업사회 일변도시 사회구조속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농업현실, 또 사제로서 생명에 대한 존귀함의 눈으로 보아온 생명산업인 농업의 중요성, 이러한 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바른 농촌가꾸기, 올바른 농업관 정립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안동교구에 생명의 공동체를 도입, 대표를 맡아 지금 안동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 사회 운동으로 키워오고 있다.
그러나 조신부는 그러한 일만으로는 농사나 농촌일에 대해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또 거리감을 절감해 왔다.
미사 한번 드려주고 격려의 당부 한마디만 남기고 후딱 떠나오는 삶이 어렵사리 농토를 지키며 살아오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계속 뇌리에 남았고, 차라리 함께모여 농사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 끝에 자연스레 신앙으로 이끌어진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조신부는「농촌공소봉사자학교」를 만들어 여기서 배출된 이들을 중심으로 농촌소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공동체가 도시ㆍ농촌을 합하여 50여개에 달하고 있다.
사목국장으로서, 생명의 공동체 대표로서 일을 해오던 조신부는 언제 한번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농부들 속에 끼어 살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지난 3월초 안식년을 맞은 조신부는 관행처럼 해온 해외연수도 마다한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바로 곳으로 찾아들었고 그곳이 바로 그의 현주소인 충북 제천군 백운면 제천국 백운면 모정리 천등산 박달재 아래 양지마을이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주일미사도 방안에서 혼자 드리곤 한다.
조신부는 이곳에 처음와서 동네사람들에게 신고식을 하면서 전후사정을 밝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1년동안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고 밝혔고, 다행히 소작을 주려는 사람이 있어 땅주인과 소출을 사륙제로 나누기로하고 논 네마지기와 밭 네마지기를 얻었다.
이땅에 벼ㆍ감자ㆍ수박ㆍ오이 등을 심은 조신부는 네마지기의 논에서 8가마 정도의 쌀을 수확할 예정인데 이중 5가마니가 자신의 몫.
이것으로는 일년동안 일한 품삯은 커녕 수확까지 볍씨를 사고 거름을 뿌리고 비료를 주는데 드는 비용도 겨우 건질 형편이다.
8월말경 출하될 예정인 밭 4백평에 심은 8백포기의 수박에 기대를 걸지만 농업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조신부는 안타깝기만 한다.
이웃의 총각도 20여일이 넘게 땀흘려 애호박을 수확, 포장비만 3백원 넘게들여 농협에 출하했는데 30개들이 호박 한상자에 8백원주더라고 한다.
조신부는 정부에서 치는 농촌의 1일 임금계산액은 3만4천원이고, 이방식대로라면 원가를 제하고도 20ⅹ3만4천원=68만원이 나와야하는데 호박50사자 팔아 4만원 건졌다고 혀를 찬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조신부는 농산물을 상품의 가치로만 보려는 공업위주의 농업과ㆍ정책 탓이라고 지적하면서『생명을 키워 생명을 유지시키는 농업의 생명적가치에서 이해되지 못할때 농업은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여기에는 농부들의 의식전환도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조신부는 이곳에 와서 손이나 기계가 아닌 던져서 모를 심는「투묘」라는 방식으로 모를 심었다.
『농업이 발전하면서 기계화 되어가는 것도 당연하지만 너무 개발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그만큼 훼손되는 것도 많다』고 말하면서 조신부가 보여준 투묘로 일군 논은 실제로 기계로 심은 논의 모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자라 있었다.
뿌리를 자르면서 심는 기계모보다 뿌리채 던져 뿌리의 활착력이 더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조신부는『기계로 심은 모들은 뿌리를 내리기까지 일주일 이상이나 살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한다.
처음 조신부가 안식년휴가 동안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교구장ㆍ선후배 동료들이나 주위에서 많이 만류했으나 다행히 이젠 이해를 하고있어 기쁘다』는 조신부는『교우들이 없으니까 신부로서의 특권을 누릴수도 없고 맨몸으로 같이 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밖에 없다』면서『교회도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에 다가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록 11월경에 내려가 다시 사목에 복귀하게 되겠지만, 1년간 함께 지낸 이들이「마흔이 넘은 신부라는 총각」을 신기해하고 도 자신의 삶에 마음이 끌려서 천주교가 무엇인가하고 한번쯤 생각나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는 조신부의 아침은 여느 농부들처럼 도시의 아침보다 일찍 밝아오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