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서품후 얼마 안되어서 교도소 사목신부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혜화동 성당에 얹혀 살면서 교도소 사목을 하였는데 하루는 서대문 구치소 교무과로부터 그곳으로 연락이 왔다.
오늘 급하게 전화연락이 갈지 모르니 어디 가지말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으란다. 이런 연락은 그날 사형집행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조금후에 연락을 받고 서대문 구치소로 달려가니 역시 사형집행이 있었다. 그날 집행자중 천주교 신자가 3명이었다. 천주교 신자 아닌 사람들도 두명이 더 있었는데 나는 우선 내가 한주일에 한번씩 만나 성체를 영해주던 그들에게 더욱 걱정이 앞섰다.
과연 이들이 이 사형집행을 잘 받아들일까? 자신들의 죄는 생각지 않고 마지막 고백성사 영성체를 거부하지는 않을까? 혹시 거부한다면 그 집행장에 있는 많은 교도관들에게 신앙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없는 것으로 비쳐질까하는 두려움으로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집행이 시작되었다. 두 사형수가 고백성사를 비롯 견진성사와 영성체를 진지하게 받고는 거기있는 교도관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는 잘 죽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사람에게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내게만 사건이지 그곳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닌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견진성사와 성체를 영해주었는데 그 사형수(너무 오래되어 영세ㆍ견진서류를 보지 않고는 그 이름ㆍ본명이 기억나지 않음)는 사형집행을 하겠다는 검사의 말이 막 떨어지자마자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가 해보라 하니 이런 요지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이 제시했던 그 구두는 내것이 아닙니다. 나는 돈없고 빽이 없어 범인으로 몰렸고 올바른 재판도 제대로 못받고 이렇게 죽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그 친구 한번도 내게 사건에 대해 말한적이 없었다. 또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본인이 사건이야기를 안하면 내쪽에서 먼저 꺼내지 않는 것이 나의 불문율이었다.
곱게 열심히만 죽어주기를 기다리던 내게는 대단한 쇼크였고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절실한 삶의 문제에 있어서 이렇게 맥없는 존재였던가 하는 허무감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 친구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이 사형집행은 마땅히 재고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즈음 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에 대한 세번의 재판기록이 다 사형으로 확정되었고 당신이 재심을 청구한 것도 기각판정이 났습니다. 오늘 사형집행을 하라고 명령이 하달된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그에게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그를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으면서 진실인지 아닐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진실앞에 이렇게 아무 힘없는 것이 나인가」느껴지면서 내게 주어진 소임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그 사형수에게 곱게만, 열심히만 죽어주기를 바라던 내 마음이 부끄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