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80세가 넘으신 노부모님을 모시고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여행 갔던 적이 있다. 낮에 폭포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야외에서 공연되는 물쇼를 관람했다.
마침, 어머니 옆에는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미국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미국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는 것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시고 그 미국여자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다. 그런데도 둘이는 손짓 발짓을 하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머니는 한국말로 그 여자는 영어로 말을 했지만 조금도 어색함이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어머니는 그 여자의 아기에게서 흘러내린 포대기를 덮어주시면서『감기 들라, 포대기를 잘 덮어야지』하시니까, 그 여자는 영어로『고맙습니다. 정말 감기들겠네요』했다. 다시 어머니는 애들이 둘이냐고 물으면서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이니까 그 여자는 손가락 3개를 내밀면서 세 명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에 간 사람들 중에 영어를 잘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조금은 알면서도 창피해서 자존심 때문에 쑥스러워서 영어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수가 있다. 그러데 어머니는 전혀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지도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말씀하신 것이다.
대화의 계기가 사람 때문이었다. 할머니다운 자상함이 말을 건네게 했고 대화를 유도하고 이끌어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말이 통했던 것이다. 뜻이 통했던 것이다. 말이 달라도 사랑이 있으면 뜻이 통하는 모양이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던 날 설교를 하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자기네 말로 알아들은 일이 있다. 말이 달라도 사랑이 있으면 뜻이 통한다. 그러나 말이 같아도 사랑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 바벨탑 사건이 바로 그러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나라 말을 잊어버릴리도 없고 각기 다른 외국어로 말을 할리도 없다. 말은 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이기심에 가득찼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을 때 이기주의에 빠질 때 말은 통할지 모르나 뜻은 통할 수 없다. 말이 안 통할 때 우리는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답답함을 느낀다.
불화 속에 있는 사람들 말은 통하지만 뜻이 안 통한다. 이기심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일치가 안 될 때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사랑에 적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이웃과 이웃간에, 신자와 신자간에, 신부와 신자들간에 뜻이 통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말로 미국사람과 통한 나의 어머니께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