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란 배설물과 같아서 그것이 쌓여 있을때는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졌을때는 땅을 기름지게한다」. 70평생을 동정녀로 살면서 산파ㆍ통역원ㆍ미군부대 세탁 하청업ㆍ고아원장ㆍ미장원ㆍ목욕탕 등을 경영 2백여억원이란 재산을 장만한 뒤 임종때 유언장으로 이를 사회복지ㆍ장학기금 등으로 쓰이도록 주님 사업에 바치고 타계한 박범숙(로사) 할머니의 보도는 참으로 신선한 감동, 그것이였다.
이미 부산의 각 일간지는 물론 중앙지까지 연달아 크게 보도된 이 뉴스를 KBS제1TV에선 50분짜리 특집으로 방영했다. 공영방송이 로얄타임인 9시뉴스에 이어 50분짜리 특집으로 다루었다면 그건 대단한 특집이 아닐수 없다. 복지기금 2~3백억, 그것은 우리 국내선 지금까진 없었던 거금이다. 충청도의 김밥할매의 50억 희사에 비해서 큰 기금이란 말도 되지만…그것보다 또 다른 의미의 기금이다. 요즘 세상에「10억만되면 그 돈은 하늘이 아는 돈」이란 말이 있지만 갸냘픈 여인의 몸으로, 그것도 많은 불편과 외로움을 감내해야하는 동정녀의 몸으로 모은 재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가톨릭신문에서 1면 머리기사로 다룰 정도로 비중 큰 기사였다.
소위 말하는 이 시대의 고통받았던 해직 기자의 신분으로 8년만에 다시 복직, 언젠가 멋진 종교기사로 한풀이를 하고야 말겠다던 나의 시각에 박로사 할머니의 취재는 참으로 신바람 나는 일거리였다. 전국 특종의 기쁨 보다는 이 진솔한 동정녀의 삶이 전국민의 눈과 귀에 비친다는 그 사실이 더 신바람나고 어깨를 펴게했다.
그리고 박로사 할머니의 수녀원 생활을 2년도 못돼 마감하게한 당시 박로사 수녀의 「말단 비대증」이란 희귀한 병, 그 병은 손ㆍ발가락이 정상인의 배로 굵어지는 병, 양쪽 새끼발가락을 잘라내지 않으면 구두를 못 신는 병, 수녀복을 입기엔 너무나 혐오감부터 주는 흉칙한 병, 결국 이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끝내 수녀복을 벗고 났을 때의 박로사 여인, 그는 얼마나 허탈하고 괴롭고 외로웠는지 감히 나같은 얼치기 신자는 짐작도 못할 일이였을 것이다.
박로사 동정녀께서 수백억원의 자산을 두고도 점심때만 되면 들고 다니던 김밥 도시락을 담모통이나 그늘밑에서 혼자 꺼내먹던 그 모습을 보고, 그를 아는 신자나 성직자들은 단순히 근검절약이라고 보도진에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취재기자의 시각엔 그의 흉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던 여인 본래의 속성으로도 보였다.
은행 잔고를 수천만원씩 두고도 괄시못할 사업가들이 그를 찾아와 밤새 조르면서 돈빌려 달라고 했을때 그는『내돈은 당신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쓸것』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고 한다. 이를 두고 우리 신자사회선「매정한 사람」,「돈만 아는 할매」,「죽을때 저 돈 다 갖고 가나 보자」고 매도하기도 했고 걸고 걸리는 맞고소도 없지 않았다.
독일 속담에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은 안된다고 안타까워하는 신부님도 있었고,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빌린게 아니라 훔쳤다」고 사실도 모르면서 혹평하는 신자도 있었기에 나는 이 박로사 할머니의 발자취가 한층더 깊이 파여진것을 보았다. 수녀복을 벗게된 그 한을 풀기위해서였던지 박로사 동정녀는 경남 창령군 성산면 산자락에 「나자렛예수자매수녀원」을 20여억원의 큰돈을 들여 세웠고 자기는 그 바로 옆에 침실과 욕실을 겸한 조그마한 「기도하는 밤」을 지은 뒤 장판지만 겨우 깔고 하룻밤도 못자보고 타계한 그 현장을 들여다보고 기자는 울었다.
인간 박로사의 일생은 한말로「인간승리」라고 잘라버리기엔 너무나 애절하고 눈물없이는 취재하지 못할 한맺힌 일생이였다.
박로사 동정녀의 영혼이 주님옆에 편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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