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자유감난에 「신부님은 편하시겠어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신부가 신자들을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써 보아야겠다.
신부들은 가끔 신자들이 부럽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 『형제님들, 자매님들 여러분은 참 좋으시겠습니다』고 말해주고 싶은 때가 있다.
얼마전 식사중에 보좌신부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교회안에는 하나마나 한것이 세가지 있단다.
- 주교님께 선물드리는 일 하나마나-
- 신부들 피정하는것 하나마나-
- 수녀님들 고백성사 보는것 하나마나-란다.
누군가가 그럴싸하게 지어낸 말이겠지만 그럴듯한 말이다 싶어 웃으며 식사했던 기억이 난다.
몇년전 꾸르실료 수강때의 일이다. 마지막 날이던가 성체를 모셔놓고 조배를 하는데 한 형제가 울음을 터뜨리더니 거의 한시간 동안을 끊임없이 우는 것이었다. 그 형제의 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숙연히 성체조배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저렇게 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피정중에 물어 볼수도 없어 혼자 약간 궁금해 하였지만 곧 답을 얻을 수가 있었다.
꾸르실료 수강을 끝내고 마지막「뛰어라」시간에 그는 제일 먼저 단상에 올라가 자신은 이 피정동안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저는 정말 많은 죄를 지었던 죄인입니다. 제가 지은 죄를 다 말하라고 하면 저는 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죄를 짓게 할것 같아 참습니다. 저는 이 피정동안 나를 용서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하면서 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궁금해 했던 생각은 싹 가시고 그 분에 대한 부러움과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부러운 마음은, 저 형제 뿐아니라 대부분의 형제들이 피정을 받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과 같구나 하는데서 생겨난 마음이었고, 두려운 마음은, 내 자신은 왜 저런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 우러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데서 생겨나는 내 마음은 돌처럼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성서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한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바로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이런 아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고 대답하셨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것은, 똑같은 인간이면서 사제로서의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보이는 모습이 가식이 섞였다면 더욱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진실히 살아야 한다는 무거움에 있는 것이다.
내가 다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때도 있고 내가 믿기지 않는 것도 믿어야 된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내 안에서 스스로 소화시켜 나가야 하는데서 신자들의 어린이와 같은 그 모습들이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