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16면 증면 지면쇄신에 따라 지난 74년 4월 21일부터 76년 8월 29일까지 1백회동안 연재했던「목자유감」을 다시 부활합니다. 사제들이 사목일선에서 체험한 재미나고 값진 내용들이 담겨질 것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님은 편하시겠요.』가끔 교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특히 요즈음은 고3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자식인 신부가 진짜 부러워서인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가장 가깝게 이런 말을 들어 본 것은, 사제의 길을 걷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결혼한 친한 친구로 부터다. 아들이 고3이 되니까 그 아들이 공부에 짓눌리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는 것이 그의 푸념이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안 낳았어도 좋을 뻔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한마디가 『야! 너는 정말 세상일에 걸리는게 없으니 참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제의 길이 좋다고 느껴본적이, 힘들고 잘못 선택했다고 느겨본때 보다는 훨씬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사제의 길을 후회해본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세상에 대한 눈이 떠지기 시작하는 때인 국민학생시절부터 사제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키워 왔던 것이 가장 큰 이유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제가 되겠다고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는 『너는 신부가 될 재목이 되지 못하니 신학교에서 나가라』는 선고가 내릴까봐 거의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기억이 난다.
대신학교 6년과 군복무 3년은 약간 다르다. 성소에 대한 자율적 선택이 은연중에 강조되는 시기였으므로 자신이 사제가 되겠다는 의지 없이는 학업성적이나 행동자체가 마음가진것 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특히 군복무 3년간은 세상 여러가지 일에 여과없이 부딛쳐 나 자신 내 목표를 더욱 선명히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 갈길이 오로지 사제가 되는 길뿐인 것처럼 딴 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오히려 사제가 된 다음에 순간적으로 내 길에 회의를 느낀 때가 있었다. 사제생활을 초년에『내가 꿈꾸어 온 사제생활이 이런 길이었던가』하며 실망스러워하였지만 역시 사제들이나 교회도 부족한 인간들이고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이같은 고민을 떨쳐 버리고 내 본연의 길을 창을 수 있었다.
새로 시작되는 「목자유감」난에 유감없이 목자유감을 말했으니 다시 처음 시작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야 겠다.
이상한 것은 신자들이 신부와 친숙하기 전에는 힘드시겠다는 말로 인사를 하다가 좀 친해져서 편하게 서로 말 할 수 있는 때가 오면『신부님은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돈 걱정을 하시나, 마누라ㆍ자식이 있어 걱정이 되시나 좋으시겠습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신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자기집에 불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한 불난집 주인이 지나가던 거지를 보고『아! 나는 당신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순간에 깨달았소』하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신자들에게 묻고싶다. 『불난집 주인이 불을 끄고 난후 거지 생활로 돌아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