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정신대 할머니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심합니다. 결혼을 아예 하지 못했거나 결혼을 했어도 실패하여 혼자사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늙은 몸으로 생계를 이어가기가 가장 난감하지요.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남은 세상, 내 집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 편히 쓰고 살다가 죽는 것 그뿐입니다』
김 엘리사벳 할머니(67세)는 17세 꽃다운 어린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모진 수모를 당하고서도 죽지 못 하고 살아 돌아왔다. 차마 당시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다. 김 할머니는 정신대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메마른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사실 살아 돌아와서 사회와 가족들에게 받은 냉혹함과 무관심이 더욱 김 할머니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지도 모른다.
현재 서울 사당동 어느 지하셋방에서 살고 있다는 김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사진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알면 그 화가 더 무섭다는 김 할머니는 8살난 손녀딸과 단둘이 힘겨운 여생을 살아가고 있다.
『40여 년간 남성공포증에 시달려 왔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부님이 봉성체 해주시려 오셨어도 방안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꼭 일본군이 나를 덮치려고 달려드는 것 같은 환상에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김 할머니는 2번 결혼, 1남1녀의 자식은 얻었으나 결혼생활에는 실패했다. 김 할머니 삶에 있어 가장 큰 기쁨과 위로는 딸이 수녀님이 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기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정신대에서 옮아온 매독으로 인해 잘생긴 아들이 정신이상이 되어 지금도 정신병원에서 그 아까운 청춘과 삶을 포기하고 있다고 생각만하면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집나간 며느리가 간간이 보내오는 용돈으로 손녀딸을 가르치는 김 할머니는 요즘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60여 명의 정신대 할머니들과「수요시위」를 한다. 그동안 살았던 굴욕과 침묵의 삶을 던져버리고 당당하게 일어나 『잘못을 사죄하라』고 빈주먹을 높이 쳐들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50회를 거듭했어도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정신대에서 당한 고문과 수모로 성치못한 육신에 쏟아지는 피로감뿐. 그러나 언젠가는 꼭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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