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동이 틀 무렵 서울 성가소비녀희 사제관에서는 4가지의 유언(遺言)이 낭독됐다.
『작은 여종들이여! 언제나 열심히 살으시오. 서로서로 사랑하고 도와주시오. 가난함과 가난한 자 그리고 미소한 자들을 사랑하시오.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범적으로 잘 공경하시오』
이 마지막 당부는 서울 성가소비녀회 창립자 고 성재덕 신부(Pierre Singer)가 이미 지난 72년도에 작성해 놓고 마지막 순간을 위해 20년간 서랍에 고이고이 간직해 온 금언(金言)이었다.
오전 6시 성신부는 수녀들의 기도속에 모국 프랑스와는 머나먼 이국(異國)에서 임종을 맞았고, 유해도 경기도 포천 성가소비녀회 관할 묘지에 안장됐다.
이로써 25세의 피끓는 나이로 한국에 들어온 젊은이가 82세의 삶과 육신까지 고스란히 이 산하(山河)에 묻은 셈이다.
1910년 프랑스 해언(hesdin)에서 탄생한 성 신부는 2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35년에 사제에 서품됐다.
그해 바로 한국에 파견돼 서울 혜화동본당과 인천 답동 등 7년간의 폭넓은 본당사목을 해오던 성 신부는 세계 제2차대전이 치열한 1943년, 전쟁의 여파로 심각한 식량문제는 물론 고아와 부랑인 장애인들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이들을 돌보아줄 수녀회를 성가 소비녀회(聖家 小婢女會)라 이름하여 12월 25일 창립하기에 이르렸다.
현재 성가소비녀회 회칙 제3조에는 「본회의 고유목적은 불쌍한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 병자, 장애자, 무의무탁한자들을 수용하여 간호하고 보호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성가소비녀회의 신비체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창립자의 정신은 90년 7월 일반진료병원인 성가병원을 극빈자와 무의무탁자들을 위한 완전 무료병원인「성가복지병원」으로 과감한 전환을 하도록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성신부는 이미 66년 서울교구로 부터 성가 양로원을 인수 받는가 하면 77년 수녀원내에 무의탁 노인을 위한「안나의 집」을 설립해 성가소비녀회가 핵가족화와 금전만능주의에 가려진 노인과 무의탁자들을 돌보는 것이 수녀회의 근본목적임을 일깨웠다.
평소 시대적인 식별능력을 강조해온 성신부는 수녀회가 처음 봉사로 시작한 일이 운영과정에서 사업적인 성격으로 퇴색하면 즉시 재고하고 원직적인 정신으로 되돌아 오도록 하는 비상한 판별력을 소유한 것으로 인정받아 왔었다.
성신부는 1945년 파리에서 열린 UN총회에서 장면씨를 도와 대한민국의 독립을 승인받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평소 드러내기를 싫어하고 겸손한 신부로 수녀들로 부터 존경을 받은 고 성재덕 신부는 평소 즐겨 가르친 싯귀같은 지침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만일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도 기뻐하라/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만일 다른사람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만일 네 뜻을 정하지 않았어도 기뻐하라/만일 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만일 너를 믿어주지 않아도 기뻐하라/너를 말째로 두어도 기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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