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1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에게 듣는다
“남북 평화와 상생의 상징
새 정부, 반드시 재개해야”
“개성공단이 지난해 2월 10일 폐쇄됐는데 그날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다시금 사순시기가 계속돼야 함을 생각합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개성공단 폐쇄 1주년을 맞는 소감을 묻자 기도와 희생, 화해와 용서의 사순시기를 먼저 언급했다.
이 주교는 개성공단을 ‘남북 교류의 마지막 보루’, ‘통일의 전초기지’, ‘통일을 앞서 체험하는 화해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개성공단에서 만난 남북 주민들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체제에서 이어온 삶의 방식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간 곳이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 같은 곳이 북한에 몇 군데 더 생기면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란 기대를 키우고 있을 때 불행하게도 개성공단은 폐쇄되고 말았고 남북관계는 ‘제로 상태’에 빠져들었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 위험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주교는 개성공단 재개의 염원을 신앙인들에게는 물론 올해 탄생할 새 정부에도 전했다.
“신앙인들은 무력으로 얻는 세상의 평화가 아닌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평화를 이루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새로운 정부는 반드시 남과 북 상생의 장소인 개성공단을 재개해 주기 바랍니다.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 대화, 다양한 민간 교류와 지원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 주교는 개성공단 재개의 형태와 존속 방안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개성공단 재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두 번 다시 폐쇄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새 틀’로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 모두가 어려운 경제를 극복할 새로운 걸음이 개성공단 재개와 함께 시작돼야 합니다. 지금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정권이 집권하든 개성공단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놨다.
“남북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이어갈 수 있는 다자안보체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다자안보의 틀 안에서 현재의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고 그 기반 아래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면 통일의 그날이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이 주교는 독일의 경우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통일정책을 유지했고 민간인들, 특히 종교인들이 인도적 교류를 지속한 것이 독일 통일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남북 정세에 따라 대북 정책을 변화시켰던 이전 정부의 행태에 우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개성공단 중단의 책임이 남한에도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개성공단 폐쇄의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신뢰가 깨진 것이 보다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북핵문제는 꼭 풀어야 할 우리의 숙제지만 숙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무한 군비경쟁에 돌입한다면 그 결과는 공멸일 뿐입니다.”
이 주교는 한반도 평화실현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시금 사순시기가 계속돼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교회는 평화 실현을 위해 상대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일치를 도모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5월 11일 개성공단에서 가까운 임진각에서 열리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 평화통일기원미사에 평화의 사도인 신자들이 참여해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합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