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윤자(안젤라), 김옥수(율리아나), 김정여(안나), 박환옥(헬레나)씨가 선산성당 마당에서 활짝 웃고 있다.
평균 나이 70세. 4개월 만에 전국 성지 111곳 순례.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꽃미모’를 가진 이들이었다.
김정여(안나·74·대구대교구 선산본당)·박환옥(헬레나·72)·김옥수(율리아나·69)·김윤자(안젤라·65)씨. 올해 5월 23일부터 9월 20일까지 매주 성지순례에 나섰다. 모두 14주에 걸쳐 17일간 일정으로 마무리했다.
4명 할머니들의 순례는 맏언니 김 안나씨의 소원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모든 성지를 가보고 싶다. 10년 전부터 마음만 먹다 주저했다. 지금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다.”
안나씨의 소원을 들어주려 같은 본당 자매들이 뭉쳤다. 운전은 막내 김 안젤라씨가 맡았다.
전국 지도를 꺼내놓고, 가까운 곳을 이어가며 일정을 짰다. 첫 순례지는 대구 남산동 성모당. 오전 미사를 봉헌하고 성모님께 기도하며 아름다운 동행에 나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지를 물었다. 추자도 황경환 묘, 울산 죽림굴, 용인 은이성지, 당진 원머리성지… 저마다 감동 깊었던 곳을 떠올렸다.
“엄마가 아이를 떼어놓는 아픔이 느껴졌어요. 정난주 마리아와 아들 황경환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죽림굴까지 따라 걸으며 가시에 찔리며 험한 길을 걸어갔을 순교자들이 떠올랐죠.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니 먹먹해졌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 헬레나씨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또 운다, 울어. 추자도에서도 그렇게 울더니…” 언니 동생들이 달랬다.
박 헬레나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남편 황사영 순교 후 제주도로 귀양 와 갓난 아들을 떼어놓고 가야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어요.”
순례는 끝났지만 그곳에서 받은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느님만 믿고 따랐던 신앙선조들의 뜨거운 믿음 안에서. 은총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부족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탬프 찍기에 연연하는 저희를 발견했죠. 성지에 방문했다는 인증보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으며 계속 순례를 이어갔습니다.”
순례 시작 전 일정을 표기한 지도. 김윤자씨 제공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대전교구 진산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순례를 마쳤다. 서로 얼싸안고 춤을 췄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인데, 저는 제가 가진 것이 많아도 아까워서 나누지를 못했어요. 내려놓고 나눠야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느꼈어요.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처럼 살진 못해도 매일 매일 그분들의 믿음을 따라 살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이번 순례에서 느낀 것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야겠다는 것. 잘 산다는 말에 여러 의미가 담겼다. 믿음, 사랑, 희생, 행복….
평균 70세 할머니들은 다음 목표를 세웠다. 국내 수도원 순례다. 전국 수도원 본원 40여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전국 성지순례를 한 번 더 하기로 약속했다.
“5년 뒤 다시 순례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체력이 될지…. 더 앞당겨야 되겠죠. 호호.”
박경희 기자 jul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