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끔찍한 일은 왜 벌어지는가?”, “왜 하필 나인가?”
죄 없는 고통 앞에서 인간은 ‘왜’라고 반문한다. 고(故) 박완서 작가(정혜 엘리사벳·1931~2011) 또한 그랬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꾸려가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 숱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생명을 잃은 대형 참사 앞에서 그는 극심한 분노와 의혹에 시달렸다.
다리 없는 몸을 바닥에 끌면서 구걸하는 이의 찬송을 들으면서는 “주님, 저 불쌍한 이한테까지 찬양을 받으셔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잔인하십니다”라면서 원망도 했다. “예수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서 성경을 통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박 작가는 “의심했기에 오히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예수의 사랑”을 산문집 「빈방」을 통해 증언한다.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통해 생의 고난이 곧 신의 사랑임을 알게 됐다는 고백이다. 자신에게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일은 곧 삶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는 일과 같았다”고 말한다.
「빈방」은 1996~1998년 ‘서울주보’에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엮은 책이다. ‘말씀의 이삭’에 실린 글은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로 처음 출간됐고,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개정된 바 있다.
「빈방」은 세 번째 개정판이자 첫 번째 증보판이다. 기존에 실리지 않았던 원고 다섯 편과 이철원 작가의 그림을 더해, 박 작가의 내면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도록 꾸몄다.
글 한 편 한 편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은 뜨거운 사람만 부르시는 게 아니라 차가운 사람도 부르신다는 것을”이라고 읊조린 박 작가의 뜻이 묻어난다.
“방이 많아 사는 게 이렇게 매일매일 허전하고 허망한 줄 알면서도 남에게 내줄 빈방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빈방이라면 잠긴 방과 무엇이 다르리까.”
연민과 사랑,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빈방」은 박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신과 인간에게 올리는 헌사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