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통일’ 꿈꾸는 북한이탈주민 최창국(다니엘)·윤향순(다니엘라)씨 부부
“나눔으로 ‘통일 밑거름’ 되겠습니다”
‘해주부용식품’ 설립하고
황해도식 왕만두 호응 얻어
공익 위해 사회적 기업 전환
“받은 은총 한국사회에 보답”

북한식 해주 왕만두 제조업체 ‘해주부용식품’ 최창국(다니엘)·윤향순(다니엘라)씨 부부가 만두를 빚으며 마주보고 웃고 있다.
‘먼저 찾아온 통일’이 만들어가고 있는 ‘작은 통일’.
북한을 떠나 남한 생활 12년째인 최창국(다니엘·47·인천 연수본당)·윤향순(다니엘라·44)씨 부부가 운영하는 ‘해주부용식품’(인천 남촌동)이 통일의 겨자씨로 거듭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먼저 찾아온 통일’이라고 하지만 탈북자 중 남한 사회에 정착해 자기 역할을 찾는 이들의 비율은 낮은 것이 현실.
황해남도 강령군에서 살던 최씨 부부는 2005년 3월 당시 6세 딸과 3세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남한 땅을 밟았다. 남한으로 온 그해, 부부를 보호관찰 하던 신자 경찰의 권유로 최 대표가 먼저 가톨릭교회에 발을 디뎠다. 좀체 마음을 열지 않던 아내 윤씨도 우연히 지나던 성당 성모상 앞에서 북에 두고 온 어린 자녀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고 난 뒤 남편과 함께 2005년 연말 세례를 받았다. 이후 신앙은 이들 부부가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최 대표는 평양기계대학을 졸업해 북한에서는 엘리트로 통했지만, 남한에 온 뒤 북한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200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편입해야 했다. 학비 마련에 막막해 하던 그에게 사랑의 손길이 와닿았다. 당시 인천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탈북자 지원에 앞장서던 오용호 신부(현 교구 사무처장)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남편이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아내 윤씨도 새벽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행상을 해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 학업도 도왔다.
2009년 대학교를 졸업한 최 대표는 남과 북 모두에서 공부한 우수인력으로 평가받아 통일 관련 연구소 입사를 제안 받았다. 하지만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으로 정육점과 ‘해주찹쌀순대국집’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3년여 자영업 경험을 쌓아 자리잡는가 싶더니 아내 윤씨가 신부전증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내 치료를 병행하면서 2012년부터는 고향인 황해도 해주 부용동에서 이름을 딴 해주부용식품을 설립하고 황해도식 왕만두를 만들었다. 최근 사업이 흑자로 본 궤도에 오르자 최 대표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받기만 하지 말고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래서 지난 5월 잘나가던 회사를 통일부 지정 ‘통일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예전처럼 회사를 운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이 수익도 올리면서 공익에도 기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판단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근로자 임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대신 수익의 3분의 2를 사회에 환원하는 공익 기업이다.
6월 9일 인천교구장 서리 정신철 주교가 해주부용식품을 찾아 공장 축복식을 주례한 것은 최 대표 부부의 신앙과 공익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한 데서 비롯됐다.
최 대표는 “7월 초에 직원 10명을 추가로 고용하게 되는데 새터민과 다문화 가족, 경력단절자, 취업준비생 등을 고루 고용해 해주부용식품에서부터 ‘작은 통일’을 이루려 한다”는 당찬 계획을 밝혔다.
“저희 부부가 이만큼 사업을 일구는 데는 인천교구 본당 90% 이상이 해주부용식품 왕만두를 알 정도로 인천교구 신부님들과 신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받은 은총을 한국사회에 돌려드려 통일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자신이 고생했던 경험을 잊지 않고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의 학업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최 대표의 웃음 가운데 통일이 부쩍 다가선 듯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최유주·전희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