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0일 열린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이해인 수녀가 한 참가자와 악수하고 있다.
암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통풍과 대상포진으로 인해 통증클리닉까지 다녀야 하면서도 이해인 수녀는 ‘명랑’했다. 전에는 수줍어서 어색했던 함박웃음, 큰 반달로 그려지는 눈매도 이제는 오히려 훨씬 자연스럽다.
이해인 수녀가 자신의 ‘첫사랑 같은’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을 맞아, 4월 30일 오후 3시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400여명의 독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회를 가졌다.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가 마련한 이 자리에는 혜민 스님과 탤런트 김현주씨가 특별히 초대됐다.
강연회에서의 명랑하고, 조금은 빠른 말투와 크게 그려지는 웃음꽃은, 그가 여전히 자신의 시들에서처럼, 작은 행복들을 찾는데 익숙함을 보여주었다.
“일상적인 것, 아주 평범한 것에서 일상의 황홀함을 느끼는 황혼이 되기를 바라고 삽니다.”
인생의 행복도 거창한 것은 아니라고 이해인 수녀는 말했다.
“나무가 기도하는 걸 들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소중합니다. 주변의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귀한 구슬들을 발견하고 꿰어서, 이웃들에게도 기쁨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주 찾아오는 병, 육체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명랑하다.
“제가 내세울 건 선명한 기억력뿐이었는데, 이제는 안경을 어디다 뒀는지 못 찾아서 못 끼고 나옵니다. 오늘도 그냥 나왔잖아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제가 이뻐 보일라고 안경을 안 낀다고 그러는데, 제가 이 나이에 이뻐보이려고 그랬겠어요. 호호호~”
혜민 스님은 민들레의 영토 안에서 두 편의 시를 골라 낭송하고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이해인 수녀처럼 고운 시만 쓴다는 힐난을 자신도 받는다면서, 사실 곱고 예쁜 시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넘어 왔기에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탤런트 김현주(39ㆍ데레사)씨 역시 두 편의 시를 낭송하고, 이해인 수녀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씨는 “수녀님께서 제게 수녀회에 입회하라고 한참을 권유”하시다가 “맨 나중에 나이를 물어보더니 나이 때문에 안되겠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이해인 수녀는 독자와의 대화 시간에는 ‘눈매 고운 소녀’였던 자신이 어려서부터 숱하게 러브레터를 받았지만, ‘석고상’ 또는 ‘통고의 성모님’이라 불릴 만큼 도도했었다고 말했다. 건강을 염려하는 독자들에게는 긍정적인 태도, 의사의 지사에 충실함, 일상의 주어진 음식을 잘 먹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병을 이긴다기보다는 함께 ‘동행’한다는 마음가짐을 약으로 삼는다고 말하고, “게을러서 관리 안하는 것 치고는 괜찮은 편”이라면서 다시 웃었다.
「민들레의 영토」는 1976년 초판을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폭넓게 사랑받으며 50쇄가 넘는 인쇄기록을 남겼다. 초판을 발행한 가톨릭출판사 홍성학 신부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오랫동안 수녀님을 사랑해온 독자들과의 특별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40년 동안 시를 통해 전해온 사랑과 희망을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만남“이라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