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쪽/1만3000원/생활성서
한 아파트 경비원이 쓰러졌다. 그 곁을 지나가는 한 여성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여섯 명이 더 지나갔지만, 그를 힐끗 볼 뿐이었다. 차량도 몇 대 지나갔지만 차를 세우고 내린 운전자는 없었다. 동료 경비원이 발견하고 신고했을 때, 그의 심장은 이미 멎었다. 누구든 한 사람만 그를 도왔어도 그 경비원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심명희(마리아·약사 겸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씨는 자신이 그 장소에 있었으면 ‘구경꾼’ 혹은 ‘방관자’였을까, 아니면 그 고통의 순간에 손을 건네는 ‘신고자’ 또는 ‘조력자’였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는 실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있다. 타인의 고통과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을 법과 제도를 동원해서라도 막아 보려는 궁여지책이다. 심씨는 “한국에는 이런 법은 없지만, 빛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손을 내미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있다”면서 자신은 “그들과 인연을 맺는 행운을 얻었다”고 전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이자 노숙인의 아버지로 불린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 신림동 고시생들을 위한 쉼터 ‘사랑샘’을 만들고 고시생들의 부모가 되어준 오윤덕 변호사 부부, 면목동 ‘차오름 공부방’ 엄마이자 교사인 모니카 선생님. 심씨는 이들을 ‘내가 만난 착한 사마리아인 3인방’이라고 부르면서 “이분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세상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나의 ‘안전함’에 안도하는 ‘구경꾼’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심씨는 이른바 ‘2%’가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약사로서의 성공을 뒤로 하고, 가난과 고통에 허덕이는 이웃들을 돌보는 길이었다. 기쁨과 보람보다는 고단함과 외로움이 더 큰 길이었다. 하지만 심씨는 인생의 낭떠러지에 있는 이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호소조차 못하는 부서진 이들을 현장으로 가서 만났고,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노숙인 자선 병원 요셉의원과 선우경식기념자활터, 고시생 쉼터 사랑샘, 어린이들을 위한 차오름 공부방,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 등에서 쉬지 않고 봉사했다.
최근 펴낸 「2% 다른 길」에서는 그가 만난 이웃들과의 만남을 풀어냈다. ‘자비의 손’이 너무나 절실한 이들과, 이들에게 기꺼이 ‘자비의 손’을 내밀면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간 이웃들의 이야기다.
문턱이 아예 없는 병원을 만들고 약 뿐 아니라 ‘밥’을 꼭 처방하던 의사, 식판을 훔쳐
간 노숙인에게 도리어 공짜 밥을 주고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한 백반집 사장, 고아 시설을 전전하다 신체장애까지 갖게 됐지만 하루하루 일과에 최선을 다하는 구두 수선집 부부…. 심씨가 풀어낸 글에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을 닮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타인의 삶 속에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는 마음, 즉 세상에서는 ‘자비’라고 부르는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내가 만난 고통 받는 이웃들 앞에서 나는 항상 물었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복음서는 명쾌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이웃들의 고통,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보아야’한다고. ‘자세히’. 텔레비전이 아닌 현미경으로, ‘오래’ 머무르며 ‘자세히’ 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