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35년
▲옛 주소: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현 주소: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초대 주임: 오(吳, Thomas Nolan) 신부(1935~1937)
▲마지막 주임: 제2대 김영식 신부(1943~1944)
평양교구 소속의 강서본당은 1935년 광너울공소를 중심으로 마산(馬山)본당에서 분리 설립됐다. 본당 설립 2년 뒤인 1937년 9월 이주백(요셉) 회장의 협조로 성당을 완공하고 축성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성당 봉헌의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아 그해 말 초대 오(吳, Thomas Nolan) 신부가 전임되면서 다시 마산본당의 관할 공소가 됐고 1942~1943년에는 진남포본당 관할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김영식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강서본당은 다시 본당으로 승격됐지만 이듬해 11월 김 신부가 서울교구로 돌아감에 따라 또 다시 마산본당 관할로 들어갔다. 이후 1949년 강서공소는 북한 정권에 몰수됐다
32. 기림리본당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40년
▲옛 주소: 평안남도 평양시 기림리
▲현 주소: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
▲초대 주임: 길(吉, Patrick Cleary) 신부(1940~1941)
▲마지막 주임: 제6대 이재호 신부(1948~1949)
기림리본당은 1940년 1월 설립돼 평양시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기림리 일대 사목을 담당했다. 평양교구 주교좌본당인 관후리본당의 신자 수가 늘어나 본당 분할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평양시가 확장되면서 장차 평양 서부 지역의 발전을 예측해 설립된 곳이 기림리본당이다.
초대 주임으로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길(吉, Patrick Cleary) 신부가 1940년 1월 부임해 이듬해 12월까지 2년간 재임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제2대 김교명 신부부터 마지막 제6대 이재호 신부까지 한국인 성직자들이 사목을 이어받았다. 일제시대와 해방기의 혼란한 시기에도 한국인 성직자들은 각종 남녀 신심단체를 조직하는 등 본당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신부가 1949년 12월 북한 정치보위부에 연행되면서 기림리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됐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