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34년
▲옛 주소: 평양시 대신리
▲현 주소: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리동
▲초대 주임: 양기섭 신부(1934~1938)
▲마지막 주임: 제5대 박용옥 신부(1944~1949)
평양교구 소속의 대신리본당은 1934년 2월 관후리본당에서 분리, 설립됐다. 관할구역은 평양시 가운데 대동강 이동 지역,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강 이남 지역, 강동군 일부 지역이었다. 본당 관할에 논재·고둔 공소 등 모두 11개의 공소를 두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전쟁 말기에 이르러 본당 활동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고 본당 청년들이 강제 징집되면서 신심 단체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45년 광복을 맞이해 본당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신자들도 자기 성화에 주력하면서 대신리본당은 평양교구의 모범적인 본당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49년 제5대 주임 박용옥 신부가 공산정권에 체포된 뒤 본당이 폐쇄됐다.
30. 관후리본당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896년
▲옛 주소: 평양시 관후리 251
▲현 주소: 평양시 중구 종로동
▲초대 주임: 최창근(Ludovicus Le Gendre) 신부(1896~1898)
▲마지막 주임: 제12대 김필현 신부(1944~1949)
관후리본당은 평양시 관후리에 위치해 있었던 본당으로 평안도에서는 가장 먼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1896년 봄 설립 당시에는 평안도 전역을 담당했다.
1905년 기명학교, 1906년 성모여학교, 1923년 성모시잉모태회를 발족시키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1943년 3월에는 홍용호 신부가 대목구로 승격된 평양교구의 초대 대목으로 임명되면서 관후리본당은 평양교구의 주교좌본당이 됐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일제에 의해 성당과 부속 건물을 징발당해 산정현의 장로교 예배당으로 본당을 옮기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광복 후 1946년 3월 공산정권으로부터 성당을 되찾았고 1948년 말 경 새 성당 완공을 앞두고 있었지만 1949년 홍용호 주교와 제12대 주임 김필현 신부 등이 공산정권에 체포되면서 본당 역사도 중단됐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