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00년
▲옛 주소: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
▲현 주소: 평안남도 남포시 와우도구역 용정동
▲초대 주임: 방(方, Joannes B. Faurie) 신부(1900~1906)
▲마지막 주임: 제11대 조문국 신부(1948~1950)
평양교구 소속 진남포본당은 1897년 진남포 개항에 따라 개설된 공소가 1900년 본당으로 승격된 곳이다. 1927년 평양교구가 설정되고 이듬해 제6대 주임으로 서(Sweeney) 신부가 부임해 1935년까지 재임하면서 본당은 도약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해방 뒤 교회에 대한 북한 정권의 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월남하는 신자들이 늘어나 본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48년 제11대 주임이 된 조문국 신부는 냉담교우에 대한 사목을 중점적으로 펼치다 1950년 6월 24일 공산정권에 체포됐다. 신자들이 1년 남짓 본당을 지켰지만 되찾는데 실패했다.
28. 중화본당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27년
▲옛 주소: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읍 초현리
▲현 주소: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읍 초현리
▲초대 주임: 지(池, Donald Chisholm) 신부(1927~1932)
▲마지막 주임: 제10대 강현홍 신부(1944~1949)
1927년 설립된 평양교구 소속 중화본당은 중화군 전 지역과 대동군 용연면 일부지역을 관할했다. 중화군 목재리에는 1864년 김기호(요셉) 전교회장과 베르뇌 주교의 노력으로 공소가 설립돼 박해시대부터 중화군은 본당이 자리잡을 기초가 마련돼 있었다.
중화본당 설립 1년 전 지(Chisholm) 신부가 이 지역에 파견돼 1927년 임시성당을 마련하고 성사를 집전했다. 1932년 부임한 제2대 주임 고(Coleman) 신부는 성당을 건립해 1934년 11월 봉헌했다. 1940년에 부임한 제6대 주임 부(Booth) 신부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일제에 체포되자 중화본당은 대신리본당에 편입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제10대 주임 강현홍 신부가 북한정권의 탄압으로 1949년 8월 월남한 뒤 더 이상 후임 주임신부가 부임하지 못했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