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헨리 나웬 신부가 생전에 활동하던 모습.


나웬과 반 고흐 그리고 렘브란트
헨리 나웬 신부가 미술 작품들 안에서 깊은 영성의 샘을 찾곤 했다는 것은 그의 저작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이자 열렬하게 하느님을 추구한 구도자였던 빈센트 반 고흐에 일찍부터 매료되었습니다. 반 고흐가 뜨겁고 타협 없이 하느님께 가는 길을 추구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진정한 연민과 일체감을 느꼈던 것을 깊이 존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예술 안에 일체의 허위와 위선과 교만에서 자유로운 영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헨리 나웬 신부는 비록 고흐에 대한 독립된 책을 생전에 출판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강연이나 강의에서 고흐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그의 작품들과 편지들을 영적 묵상으로 다가가는 문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헨리 나웬 신부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 다가서면서 역시 네덜란드 출신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웬 신부는 렘브란트의 강렬한 미술 작품을 통해, 깨어진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며, 속함을 갈구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영성을 길어내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절하게 바라보는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만이 아니라 이 화가의 삶의 여정이나, 성정들 모두가 나웬 신부에게는 매우 강렬한 영적 자극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렘브란트가 보여준 위대함만이 아니라 분노, 허영, 욕망 등의 수많은 약점과 과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렘브란트는 삶의 단계마다 남긴 수많은 자화상이 말해주듯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여하간에 대면하고 미화하지 않고 드러내려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고, 이 점이 나웬 신부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렘브란트의 작품만이 아니라 그의 전기들을 깊이 연구하면서 나웬 신부는 렘브란트의 어둡고 추한 모습들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러한 모습들이 자신 안에도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그에겐 자신의 영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그의 영성을 성숙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의 중심에 렘브란트가 인생의 영락을 겪고 모든 세속적 영화를 잃은 만년에 더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그린 ‘탕자의 귀환’이 있습니다.
‘탕자의 귀환’에서 발견한 영성의 문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은 헨리 나웬 신부가 영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에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성 저자이자 강연자라는 명예와, 중남미의 독재와 폭력, 가난의 현장에 참여하고 그 체험을 미국 전역을 다니며 강연하는 양심적 참여자로서의 활동들로 그의 삶은 빛났지만 그 이면에는 마치 집을 나간 아들과도 같은 소진과 외로움이 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즈음인 1983년, 그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트로슬리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지인을 만나러 들어간 한 사무실에서 문에 붙여진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복제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무릎을 꿇은 청년의 어깨에 놓여진 노인의 두 손에 ‘일찍이 느낀 적이 없었던’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트로슬리를 떠난 후에도 이 그림은 나웬 신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게 새로운 영적 지향과 삶의 변화로 이끌어갔습니다. 2년 뒤 하버드대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나웬 신부는 다시금 트로슬리를 방문해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이 자신의 소명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한 해를 보내게 되었고, 마침내 토론토의 라르쉬 공동체인 ‘새벽’에 속한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곳을 떠나기 직전에 그는 생각지도 않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이 그림의 원본을 만나고 며칠간 깊이 묵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결실이 바로 그의 가장 아름다운, 또한 잘 알려진 책이라 할 「탕자의 귀향」(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2009)이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이 자신의 영적인 삶에 갖는 의미를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환’ 일부를 처음 본 순간, 나의 영적인 여정은 시작되었으며 마침내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마무리 지어야 하는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멀고도 긴 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나웬 신부는 고향 없이 방황하고, 세상이 주는 허상에서 잠시 지속되는 위안과 행복을 찾다가 점점 우울함과 절망에 빠지는 둘째 아들의 입장, 숨겨진 분노와 완고함으로, 회심의 기회조차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는 큰아들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성찰합니다. 그러나 결국 나웬 신부가 이 그림을 통해 눈을 뜨고, 삶으로 살아내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영적 깨달음은, 우리 모두가 아버지가 되어가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귀중한 소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웬 신부는 사람이 그 소명을 기쁘게 책임을 가지고 수락할 때 행복할 수 있으나, 수많은 이들이 자기자신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그러한 일생의 가장 중요한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다고 「탕자의 귀향」에서 말합니다.
“정말 아버지를 닮고 싶기는 한 걸까요? 진정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용납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는 한 걸까요? 집으로 돌아와 환영받을 뿐 아니라 돌아온 이를 환영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걸까요? 불쌍히 여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이 되기를 참으로 소망하는 걸까요?
의존적인 어린 아이 상태로 남아 있으라는 교묘한 압력이 교회와 사회 양쪽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아버지가 되는 두려운 과업을 회피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지는 않았나요?”
나웬 신부는 자신의 새로운 영적인 길은, 바로 그분의 사랑 받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닮고, 그분처럼 되기 위한 일상을 사는 것임을 깨닫고 다짐합니다. “탕자의 아버지를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서 더 이상 아들의 신분을 이용해 아버지가 되기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의 지위를 충분히 만끽했다면, 이제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눈앞에 있는 저 노인처럼 되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진리를 주장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책을 맺습니다. “나이 들어 쪼글쪼글해진 내 두 손을 바라봅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이것은 고통을 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밀라고, 집을 찾아온 모든 이들의 어깨에 내려놓으라고, 하느님의 그 어마어마한 사랑에서 비롯된 축복을 베풀라고 주님이 주신 손입니다.”
나웬 신부의 안식년의 일기 중 5월 30일자를 보면 그가 흔쾌히 이 그림과 자신의 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한 네덜란드 방송국 제안을 받아들여 9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겠다고 적어놓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해 9월, 그는 방송 작업을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운명합니다. 그러니 이처럼 나웬 신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그림인 ‘탕자의 귀환’은 결국 그의 삶의 마지막도 동반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