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소 앞에서는 늘 설레고 두렵다. 죄의 때를 씻을 생각에 설레지만, 악행들을 입에 담아 고백하기가 부담스럽다.
새내기 직장인 김영인(베드로·31)씨, 취업 때문에 노심초사하다 2년을 냉담했다. 큰 맘 먹고 성사를 보고, 후다닥 보속까지 마치고 나왔다. 목욕탕에서 빡빡 때를 민 듯, 정갈해진 마음을 따라 몸도 깔끔하다. “진즉에 할 걸…” 하지만 김 씨는 고해소 앞에서 30여분간 망설이긴 했다.
쭈삣거리면서도 성사를 보는 이들은 나은 편. 판공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2014년 한국천주교회 통계를 보면, 부활 판공 참여자는 33.3%, 성탄 판공 참여자는 31.3%에 불과하다.
영혼을 씻는 고해에 왜 이리 인색할까? 이유가 많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명이 설득력을 보인다. 교황은 1월에 펴낸 대담집 「하느님의 이름은 자비」(The Name of God is Mercy)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우리 시대 비극이 죄의식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비극이 더해졌습니다. 죄를 치유받거나 용서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비극입니다.”
‘나는 용서받을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극이지만,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비극이다. 그래서 교황은 고해사제가 자기 권한으로 죄를 사해줄 수 없을 때에는 축복이라도 내려주라고 말한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자비의 체험’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고해성사는 그 체험을 선사하는 은총이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하느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뉘우치는 이들을 용서해주신다는 확신이 고해성사를 보러가는 이들의 마음이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막하면서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는 엄격함이 아닌 자비의 영약을 사용하고자 한다”고 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폐막 때 “공의회의 신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공의회 정신은 자비였다. 누구보다도 공의회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받는 가정들을 위해 두 차례 주교 시노드를 열었고, ‘자비의 희년’을 선포해 모든 이가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고 닮아가기를 권고한다. 그런 자비의 희년을 여는 첫 걸음은 바로 고해성사이다.
신앙 선조들은 은총의 선물로서의 고해성사를 이미 잘 체득하고 있었다. 모진 박해와 사제 부족으로 선조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는 날은 1년 중 오직 한 번 뿐이었기에 판공성사는 간절하고 소중했다. 선교사제들은 신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알기에 상복을 입고, 미행을 피해 산길을 이용해 전국의 교우촌을 찾아다녔다.
교우촌이나 공소에서 판공성사를 하는 날은 명절과 같았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농사일도 쉬면서 판공을 준비했다. 사제는 엄격하게 신앙생활을 점검했고, 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게 된 신자들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판공 준비를 할 필요도 사제가 관헌의 눈을 피할 이유도 없는 오늘날, 판공을 피하는 세태는 선조들을 욕보이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시작하는 자비의 희년, 더욱이 때마침 사순시기이다. 서둘러 판공에 나서자.
너무 서둘러서 부활에 임박해 또 죄를 짓는다면…. 고해성사 한 번 더 본들 어떠할까.
판공,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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