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연도: 1916년
▲옛 주소: 황해도 사리원시 북리
▲현 주소: 황해북도 사리원시 북일동
▲초대 주임: 이기준 신부(1916~1923)
▲마지막 주임: 제5대 박우철 신부(1942~1950)
현재 북일동으로 지명이 바뀐 황해도 사리원시 북리 103번지에 있었던 사리원본당은 1916년 6월 초대 주임 이기준 신부가 정착하게 되면서 매화동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했다. 이 신부 재임 시절 본당 신자들이 생활고로 평양, 진남포 등지로 이주하면서 교세가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로한 제5대 주임 박우철 신부의 보좌로 전덕표 신부가 1946년 12월 부임하면서 본당 사목이 활기를 띠기 시작해 본당에는 ‘79위 복자반 학생회’, ‘소화 데레사회’ 등 여러 평신도 단체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10월 중순 행방불명된 전 신부가 공산군에 의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같은 해 11월 박 신부가 월남하면서 사리원본당은 폐쇄됐다.
14. 정봉본당

▲설립연도: 1928년
▲옛 주소: 황해도 신계면 고면 정봉리
▲현 주소: 황해북도 신계군 고면 정봉리
▲초대 주임: 이보환 신부(1928~1933)
▲마지막 주임: 제3대 이순성 신부(1935~1950)
1928년 5월 본당으로 설정된 정봉본당 초대 주임 이보환 신부와 신자들은 초창기 본당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사목활동에는 여러 어려움도 따랐다. 마지막 주임인 제3대 이순성 신부 재임 기간 중에는 일제에 의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식량 부족을 겪었고 성당에 있던 종까지 전쟁 물자로 징발당하는 시련이 있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공산정권의 반 종교 정책이 강화되면서 성당을 인민위원회에 양도하라는 강요를 당하게 됐다. 이 신부는 공산주의자들의 요구를 거절하다 1950년 7월 5일 정치보위부에 잡혀가 행방불명되고 말았고 주임신부를 잃은 정봉본당은 침묵에 빠졌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