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을 것인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신화적 인물로 남아 있는 김홍섭(바오로ㆍ1915~1965) 판사. 50년 짧은 인생에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단순한 법사상을 넘어 법신학적 차원에까지 다다른다.
「사도법관 김홍섭 평전」(최종고 지음/452쪽/1만8000원/나비꿈)은 법률가이자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비범한 자기성찰과 구도의 길을 모색한 한 지식인을 다방면에 걸쳐 탐구한다.
장면(1899~1966) 총리는 김홍섭 판사를 사도 바오로와 같은 ‘사도법관’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종교적 사유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제국주의에 의해 고통 받던 민족 현실을 고민한다.
아브라함 링컨 전기를 읽고 법관의 꿈을 꿨고 일본 강점기에 변호사로, 해방 후에는 검사로 활동한다. 해방된 조국이 혼란에 빠지자 사표를 내고 뚝섬에서 농사를 짓다 김병로 대법원장에 의해 판사로 임명된다.
이 책은 장충단 집회 사건(1957), 경주호 사건(1960) 등 굵직한 한국 현대사 사건들을 재판하면서 피고의 입장에서 형벌에 대해 고뇌하는 법관상을 조명한다.
실정법이라는 한계 때문에 사형선고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사형수들을 찾아 신앙을 권유해 ‘사형수의 대부’로 추앙받던 모습을 사형수와의 편지를 통해 알아본다.
그는 ‘가난의 영성으로 가난하게 살다 간 판사’다.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 판사를 거친 그였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다. 전주지방법원장으로 취임할 때도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도시락을 들고 갔다고 전해진다.
이토록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의 그가 종교에 심취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고 절에 다니며 스님들과 ‘인간 구원’의 문제를 상담했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1953년 육당 최남선(베드로·1890~1957)을 만나 깊은 교감을 나누고 함께 가톨릭으로 귀의한다. 저자는 이 대목을 한국 정신사와 지성사의 중요한 대목으로 서술한다.
그는 “불교에서 ‘씨’를 얻고 루터에게서 ‘날’을 배워 마침내 날과 씨를 ‘어머니 교회’ 가톨릭에서 깨쳤다”고 말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그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가입하고 ‘준주성범(遵主聖範)’을 매일 읽으며 묵상한다.
김 판사가 법조계에 뿌린 씨앗은 현재 가톨릭법조인회로 이어진다. 사형수를 돌봤던 그의 선구적인 정신은 교도소사목회로 연결되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전문 법률가’가 양성되는 현재 법조계의 양적 성장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바람직한 법관상이 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지금, 사도법관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구원이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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