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재령본당

▲설립연도: 1899년
▲옛 주소: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
▲현 주소: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
▲초대 주임: 르 각 신부(1899~1905)
▲마지막 주임: 제7대 양덕환 신부(1946~1950)
재령공소에서 1899년 5월 본당으로 승격된 재령본당은 황해도 재령군, 봉산군 전역과 신천읍, 서흥읍, 평산군 일부 지역 등 넓은 지역을 관할했던 곳이다.
초대 르 각 신부는 1899년 8월 모성(慕聖)학교의 모체가 되는 본당 부설 초등학교를 개교했고 여러 공소를 설립하며 활발한 사목을 펼쳤다. 제6대 주임 김경민 신부(1943~1946)는 신자들과 힘을 모아 일제 말기 징발로부터 성당의 종을 지켜내기도 했다. 재령본당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본당 운영을 원활히 해나갔지만 1950년 10월 양덕환 신부가 납치돼 행방불명되며 침묵에 빠졌다.
10. 서흥본당

▲설립연도: 1915년
▲옛 주소: 황해도 서흥군 서흥면 예운리
▲현 주소: 황해북도 서흥군 서흥읍 예운리
▲초대 주임: 이기준 신부(1915~1916)
▲마지막 주임: 제3대 임충신 신부(1939~1942)
서흥본당은 1915년 9월 검수본당 제4대 주임 이기준 신부가 검수본당을 폐쇄하고 본당을 서흥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신자들 사이에 불화가 생겨 사목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기준 신부는 1916년 6월 다시 사리원으로 본당을 옮겨 사리원본당을 설립했고 서흥본당은 공소가 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37년 안학만 신부가 제2대 주임(1937~1939)으로 부임했고 1939년에는 제3대 주임 임충신 신부(1939~1942)가 부임하며 본당의 역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1942년 1월 임 신부가 곡산본당으로 전임되면서 서흥본당은 다시 사리원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