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내포성지에서 필자는 매년 3월 30일에 도보순례를 주관한다. 완장포구에서 서짓골까지 순교성인들의 유해 안장 경로를 걷는 순례이다. 병인년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다섯 성인을 기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을 특별히 기리기 위해서 11월 11일에도 도보순례를 한다. 이 날은 ‘보행자의 날’이며 성 마르티노 주교님의 축일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군인으로서 어느 겨울밤 아미앵(Amiens)성 밖에서 추위로 떨고 있는 거지에게 망토를 두 조각내어 입혀 주었는데, 그 거지가 꿈에 나타나 고맙다면서 이름이 예수라 했다는 일화를 교훈삼아 유럽에는 마르티노 축일부터 성탄 맞이 선행을 시작하는 풍속이 있다. 이에 아미앵 출신이신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을 기리기 위해 도보순례를 하고, 순례미사 헌금 중 반을 성탄 맞이 선행을 위해서 바친다.
다블뤼 주교님은 박해시기 한국에서 22년 동안 사목하시고 병인년에 장렬한 순교로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되셨다. 그분은 교우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처럼”(요한 10,18 참조) 스스로 체포되어 순교하셨다.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분들 중 황석두 루카 성인의 시신은 부여 홍산 삽티에 따로 안장됐고,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 위앵 루카 신부, 장주기 요셉 성인의 시신은 보령 미산 서짓골에 안장됐다. 험난한 경로를 거쳐 네 분 성인을 안장해드린 신자들도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서짓골 묘소는 돌보는 사람 없이 16년 간 방치됐다.
1882년에 조선교구는 서짓골 묘지 진토 속에서 유해 조각들을 수습해 일본 나가사키로 옮겼다. 12년 동안 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 경내에 모셔졌던 유해는 1894년 한국에 반환, 지금은 절두산 기념성당에 안치돼 있다.
필자는 절두산성지를 찾을 때마다, 그분들의 유해가 먼 길을 돌고 돌아 모셔진 역사에 대한 감회를 가슴에 담곤 한다. 그 감회로 서짓골 무덤 터에서 기도할 때마다, 부활의 새벽 ‘빈 무덤’에서 울던(요한 20,11) 마리아 막달레나의 심정이 되곤 한다. 그리고 서짓골을 찾아온 순례자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부활을 체험하지 않는가! 여기 묻힌 분들의 육신이 삭아 없어진 빈 무덤, 곧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부활 새벽의 증표 아닌가!
그분들의 유해를 모셨던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을 찾아보는 심정, 그게 곧 막달레나와 같은 믿음 아니겠는가! 충청도 서짓골에서 나가사키 오우라(1882년), 나가사키에서 서울 용산신학교(1894년), 용산에서 명동대성당(1900년), 명동에서 절두산에(1967년)…! 이러한 무덤순례로 우리 선대의 처절했던 신앙의 역사를 가슴에 새길 수 있지 않은가!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으로 2016년에 대전교구 서짓골에서 출발해 나가사키교구 오우라에 이르는 순례와 더불어, 오우라 경내에 네 분 순교성인 현양비를 세울 계획이다. 그로써 260년 동안의 혹독한 박해를 견디어 낸 일본 신자들의 신앙이 증명된 1865년에 이어, 참혹한 박해로 1866년 한국순교자들의 신앙 증표(유해)를 1882년 이후 12년 동안 일본교회가 보듬었다는 역사를 길이 새기려 한다.
같은 시대 한국과 일본의 신앙체험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신앙으로써, 죽었지만 영원히 살아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빈 무덤 순례’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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