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깨어있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한국 주교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있었던 지난해 추계 정기총회를 마치고 발표한 공동 담화에서 ‘부끄럽다’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지 못했다는 교황의 지적은 한국 주교단에 뼈아픈 질책이었습니다.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아도,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교회를 만들어 버린 것을 주교단은 깊이 부끄러워했었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큰 영광이요 기쁨이었지만, 그의 메시지들은 기쁨으로 들떠있게 하기보다는 고개 숙여 성찰할 것을,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촉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교단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여정을 시작할 것”을 권고했고, 이후 한국교회는 부족하나마, 교황이 던져준 참된 복음화의 과제, 끊임없는 자기 쇄신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뒤, 꼭 1년이 되는 올해 8월 한국교회를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는 가진 것을 버리는데 익숙치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고 미지근합니다. 교황님은 ‘극단적으로 복음적’이기를 요구하지만 매번 우리는 우유부단합니다.
한심할 정도로 수동적이거나 고집 센 평신도와 독단적인 사제가 여전히 교회 안에 함께합니다. 세속적 성취를 복음의 선포로 착각하면서, 가난한 이들이 발붙일 자리를 박탈합니다.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함부로 하느님 백성을 단죄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정당하다며 쇄신이나 변화의 필요성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전히 우리들은 교황님께서 주신 메시지에 부응하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교황이 뿌려준 쇄신과 ‘회심’의 씨앗이 땅밑에서 움터나오고 있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곳곳에서 회심의 징후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커다란 집으로 지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땅의 하느님 백성들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쇄신할 길을 모색하는, 복음화의 초석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사제들이 개인적으로, 나아가서 공동체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살피고, 행동과 습관을 성찰하며,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경계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서울대교구의 일부 사제들은 정기적으로 ‘사제토론회’를 갖고 교황의 권고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서로 나눕니다. 청주교구 사제들은 신자들의 바람에 귀기울이고 앞으로는 사제 전체 모임을 갖고 쇄신의 실천 지표를 모색한답니다. 마산교구 사제들은 ‘가난한 사제’가 되기 위해 불우이웃돕기에 적극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교구 신부님들이 뜻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쇄신은 전방위로 이뤄져야 하기에 모두가 중요하지만, 특별히 신부님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한국교회 쇄신의 전망을 밝게 해줍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멉니다. 사실 쇄신과 회심은 교황 방한 1주년을 보내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1년 동안 성과가 미흡했다면, 이제부터 박차를 가하면 될 것입니다. 뜻있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주체적인 평신도들의 노력이 더해지고, 봉헌생활자들의 깊은 영성을 거름삼아 한국교회의 쇄신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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