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해송 전집 8·9·10권.
“고국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귀국할 비행기 티켓을 구할 형편이 못 돼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5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 재미(在美) 시인 마종기(라우렌시오·76)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부친 고(故) 마해송(프란치스코·1905~1966) 선생의 문학전집 완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죄책감부터 털어놨다.
마종기 시인은 의과대학원 졸업 후 공군 군의관 복무 중 지난 1965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在京) 문인 82인 서명’에 동참했다가 갖은 탄압을 당한 뒤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지난 1966년 11월 초 서울 명동성당에서 최민순 신부 주례로 거행된 부친의 장례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다. 마 시인은 “아버지는 나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만 50년이 되는 올해 전집을 완간하게 돼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씻게 됐다”고 말했다.

▲ 1965년 마종기(오른쪽) 시인이 공군 군의관으로 근무할 당시 서울 명륜동 집 근처에서 부친 마해송 선생과 찍은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학과지성사 제공)
빼어난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 언론인이었던 마해송 선생은 지난 1923년부터 1966년 작고 전까지 총 309편의 수필을 썼다. 고인의 글에는 식민지시대를 거쳐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 그곳의 궁핍하고 억압 받는 민중들의 면면이 펼쳐진다. 당대 권력을 향한 치열한 비판과 풍자정신도 잃지 않았다.
특히 고인의 가장 긴 산문인 ‘아름다운 새벽’(마해송 전집 제10권)은 마해송 선생이 가톨릭으로 입교한 내면풍경을 담고 있다. 이 글이 소개된 잡지 「사상계」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산문은 마 선생이 유·소년기 이후 체험했던 여러 종교들에 대한 사적 단상들과 더불어 생사의 고비에서 그토록 갈구하며 찾았던 ‘임’과 마주하는 여정을 담담히 그려냈다. 아울러 오랫동안 불화했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극적인 장면을 포함해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성장소설’의 묘미도 자아낸다.

▲ 마종기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
지난 5년간 썼던 시 총 51편을 담은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와 지인들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아픔을 시인 특유의 간절하고 지순한 목소리로 전한다. 시력(詩歷) 50년을 훌쩍 넘긴 마 시인은 부친으로부터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서울 혜화동본당 미사에 참례하셨어요. 제가 주일을 지키지 못했을 때도 아버지께서는 저를 사랑으로 독려하셨습니다. 신앙은 저의 삶 면면히 영향을 끼쳤죠. 제가 겪은 이별과 상실의 고통은 신앙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가톨릭 신앙이 전부입니다.”
■ 고(故) 마해송 선생은…

광복 직전 귀국해 작품집필에만 전념하다 1957년 강소천 등과 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기초하는 등 아동인권 회복운동에 기여했다. 1966년 만 61세로 서울에서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