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천주교 수용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선교사없이 학자들의 한역서학서를 통하여 학문에서 신앙으로 이어진 독특한 천주교 전래였다.
여러 종류의 한역서학서 중에서 특히 천주교를 믿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천주실의」와 「칠극」이었다.
「칠극편서」를 쓴 진양채는 판토하의 「칠극」이 천지의 주인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자비를 베풀고 하느님을 믿고 바라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아주며 교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죄를 뉘우쳐 참으로 돌아가는 것을 입문으로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큰일에 대비한 것이 있어 근심이 없는 것을 마지막으로 삼고 있다.
판토하는 모든 악한 일은 욕망에서 나오고 욕망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만 다스렸기 때문에 죄가 되고, 허물이 돼 온갖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 뿌리가 마음에 숨어 있으면, 외면에 갑자기 부(富)를 바라고, 귀(貴)를 바라고, 안락(安樂)을 바라는 세 개의 줄기가 생긴다.
부를 바라면 재물에 대한 탐욕을 낳고, 귀를 바라면 거만함을 낳고, 안락을 바라면 음식에 대한 욕심을 낳고, 방탕함을 낳으며, 게으름을 낳는다.
이 세 가지를 바라는 마음이 자아를 이기면 질투가 생기고, 그것이 자아를 빼앗으면 분노가 생긴다.
사람의 마음의 병은 일곱 가지가 있고 이것을 치료할 약 또한 일곱 가지가 있는데 이는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쌓는 것이다.
즉 쌓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영원한 즐거움과 영원한 복을 쌓는 것이요, 가장 없애야 할 것은 영원한 괴로움과 영원한 재앙이다.
천주교에서는 죄의 근본에 일곱 가지 실마리가 있다고 한다. 「칠극」은 이 실마리를 이겨내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교만함은 겸양으로, 질투는 남에게 어질게 대함과 사랑으로, 인색함은 재물을 버림으로, 분노는 참고 견딤으로, 먹고 마시는데 빠지는 것은 집착을 없앰으로, 여색에 빠지는 것은 욕망을 끊어내는 것으로, 게으름은 하느님을 부지런히 섬겨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욕을 이기는 것은 오래된 집을 헐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욕망을 이기려면 반드시 그 하나하나 따로 공격해야 하며, 쉽고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덕이 늘어나면, 비로소 어렵고 큰 것으로 차츰 나아간다.
욕망을 이기고 덕을 닦는 일을 종일토록 논의하고, 평생토록 힘쓰는데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덕이 쌓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 가지 이치가 어둡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이치는 첫째는 근본을 생각하지 않음, 둘째는 마음이 깨끗하지 않음, 셋째는 절차를 따르지 않음이다.
오늘날 우리가 칠극에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나를 알고, 이웃을 알고, 주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자신·이웃·하느님과의 화해로 함께 주님 뜻 안에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는 매순간 깨어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자신의 중심에 둬야 한다. 하느님이 주인이심을 인지하고, 내재된 갖가지 욕망을 덜어내는 인내와 수고를 일상의 순교로 봉헌하고, 베풂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친교의 삶을 살아낸다면, 마지막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을 뵙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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