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에고의 어둠과 망상으로부터 성령의 빛과 실재에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고의 고통과 슬픔과 죽음에서 벗어나 성령의 기쁨과 평화와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그렇게 되길 원할 것입니다. 다만 그 길을 모르고 방법을 몰라 방황하며 허덕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그 길을 찾아봅시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그 결과 깊은 죄의식 내지 죄책감에 시달리며 두려움과 불안 심지어는 공포에 시달립니다. 과연 얼핏 보기에 우린 쉴새 없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손이 내 발에 상처를 내며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몸이라야 해도 입히며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내 손이 내 발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한 몸인 내 몸이기 때문입니다. 즉 죄라는 것은 나와 남이라는 분리가 끼어들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분리가 있고 나와 남이라는 인간들 사이의 분리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인간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봐 왔던 것처럼 하느님과 우리가 분리되어 있고 인간들 사이에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착각이요 망상이요 허상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과연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 점을 잘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우리는 서로서로 지체가 된다고 말입니다. 하느님 따로 계시고 우리 따로 있고, 우리 모두도 서로서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지체를 이루며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한 몸 안에서 어떻게 죄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성령의 차원입니다.
함에도 적어도 겉보기엔 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말과 행동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죄 아니라고 말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게 들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죄라고 굳게 믿으며 그 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에고는 우리 마음 안에 온갖 죄책감과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며 마치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설쳐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에고가 쳐 놓는 덫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하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댈 것입니다. 참으로 가련하고 슬픈 일 아닙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죄라고 하는 그것들이 모두 우리의 무지에 의해, 실수에 의해 벌어지는 것들이란 사실입니다. 알면서도 죄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짓이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들의 행위를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죄는 참된 실재라기보다는 허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죄를 응시하는 가운데 오히려 죄에 사로잡혀 버릴 것이 아니라, 죄라고 생각하며 빠져들고 있는 내 모습을 우습게 생각하며 그런 죄의식을 훅 불어 촛불 끄듯 꺼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그 죄라고 보이는 것이 나의 무지와 실수에서 비롯된 것임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이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남에게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죄들과 남들이 나에게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죄들을 용서함으로써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덕이 높아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라는 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우리의 무지와 망상과 착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용서할 때 비로소 죽음의 에고의 차원에서 벗어나 생명의 성령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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