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알고 지내는 교구 신학생이 얼마 전에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부제님은 평소 나와 함께 하는 작업이 있어, 약속한 날에 연구소에서 만났습니다. 성직자 복을 입고, 흰색 로만 칼라를 하고 나타난 부제님의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요, 음, 너무 잘 어울린다는 표현이 맞는지! 또한 산뜻하고 더 겸손해진 부제님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오전에 함께 해야 할 작업을 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어떠한 주제에 나름 결론을 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없는 돈에, 그래도 우리 부제님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싶어서 외식을 나왔습니다. ‘뭘 먹고 싶냐’는 말에, 부제님은 그동안 서품 축하해 주시는 분들이 맛있는 것을 많이 먹게 해 주셔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우동을 먹으며 부제서품 받은 후 일상의 모습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물었습니다.
“부제님, 요즘은 주로 어떻게 지내요?”
“본당 관리장 하면서 지내요.”
“아니, 왜?”
“두 달 전에 본당 관리장님이 그만두셨거든요. 그래서 당장 대신할 분을 찾을 수 없어, 우리 본당 신학생들과 제가 순번을 짜서 돌아가며 본당 관리를 해요. 낮에는 신학생들이 본당 활동을 하면서 본당을 관리를 해요. 그러다가 저를 비롯하여 고학년 신학생들이 저녁 관리장 역할을 해요. 저녁 미사 후 문단속을 하고, 다음 날 새벽 미사 전에 본당 문을 열어 주는 시간까지 관리장님 방에 있는 거예요.”
“와, 힘들겠다. 신학교 방학이 짧아 친구들 만나고, 본당 청년들도 만나고, 그러면서 부모님과 함께 있을 시간도 부족할 텐데. 그나저나 힘들죠?”
“아뇨, 전혀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묵상하게 해 주네요. 야간 일과는 저녁 미사 후 단체들 모임이 끝나면 9시나 9시 30분 정도가 돼요. 그러면 성당 마당을 한 바퀴 돌고,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교육관 내 각 방 소등 및 난방기가 꺼져있는지를 확인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감실 등만 켜져 있는 성당에 들어가요. 그런 다음 성당 내부와 이층, 그리고 유아방이랑 제의방을 확인하고, 창문이 잘 닫혀있는지를 살펴요. 맨 마지막에는 그냥 감실 앞에 가만히 앉아 있어요. 가만히! 그러면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져요. 그러면서 예수님 앞에서, 오늘 하루 감사 기도를 바치게 돼요. 그러면서 ‘내가 교회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하루, 우리 성당을 찾은 신자들 모두, 지금 이 시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돼요. 그리고 관리장님 방에 들어와 새벽에 일어날 시간을 맞춘 다음, 가볍게 씻고 책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게 돼요. 관리장 역할을 안 했으면 전혀 몰랐을 일인데, 실제로 사제 서품 받기 전에 관리장 역할을 하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본당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배우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두 번 해 보는 관리장 역할이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어 참 좋아요.”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는 부제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문득 좋은 체험이 좋은 마음을 가지게 해 주고, 좋은 마음은 좋은 삶과 좋은 사람을 만들어 준다는 확신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우리 부제님, 좋은 사제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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