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분 중에 남편은 요리사, 아내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부부가 있습니다. 며칠 전,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 앞을 동창 신부와 들렀습니다. 마침 영업을 마치고 정리를 하던 때라, 그 남편은 우리를 보자, 무척 반기며 직원들을 퇴근을 시킨 다음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남자 셋이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말이야, 그토록 착하고 예쁜 아내를 만났으니, 이 세상 전부를 얻은 거야!”
그러자 남편은,
“그 말 맞아요, 신부님. 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제 집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께 지금도, 날마다 감사 또 감사를 드려요.”
“그런데 둘이 어떻게 만나 결혼을 했어요?”
“우리는 4년을 연애한 후 결혼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저는 가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아내를 데리고 서울 혜화동성당 성모상 앞에 갔어요. 그때는 집사람이 신자가 아니었기에, 무슨 일인가 했겠죠. 나는 집사람을 옆에 세워두고, 성모님께 기도를 했어요. 사실 집사람 얼굴 보고 프러포즈를 하기에는 용기가 없어서, 기도로 프러포즈를 했던 거예요. ‘성모님. ○○를 사랑합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부족하지만,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이 사람이 행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모님, ○○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준비해 간 묵주 반지를 집사람에게 주었어요. 그러자 제 마음을 받아준 베로니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그 뒤로 혼자서 성당을 다니며 교리반을 들어가더니 영세를 받았고, 그해 우리는 결혼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성모님과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살아요.”
‘세상에, 프러포즈를 기도로 하다니!’ 정말 기막힌 프러포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서울 혜화동성당인가!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그 많은 성당 중에 왜 하필이면 혜화동성당이야?”
그러자 그 남편은 웃으며,
“저는 고등학교를 혜화동성당 옆에 있는 동성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고등학교 다닐 때 신자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이상하게시리, 결혼은 꼭 혜화동성당에서 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 후 군대에서 종교 행사를 가게 되어, 아는 것이 천주교라 천주교 종교 행사를 다녔고, 그래서 영세를 받았어요.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혜화동성당이 떠나지 않았어요. 학교 다닐 때 늘 스쳐 지나던 성당, 어쩌면 그곳이 나에게 마음의 안식처, 위안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혜화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집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혜화동성당에서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처럼 성당 근처에서 피자·파스타 집을 하구요! 어릴 적, 비록 신자가 아니었지만 늘 마음으로 기댈 수 있었던 성당이 있어, 지금 이렇게 집사람과 알콩달콩 살아요.”
얼마 전, 결혼 5년 만에 아이가 생겨 입이 귀에 걸린 남편. 그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배불뚝이 아내. 이 둘은 지금도 혜화동성당 마당에서 성모님과 했던 약속을 지키려 진심 서로를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문득, 좋은 부부란 처음의 다짐을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키려 매 순간의 행복을 잘 엮어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처음의 다짐, 그 약속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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