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마치 앞으로 나아가는 두 발의 움직임과 같아서, 첫 번째 발걸음은 ‘봉사’ 활동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시적 접근만으로는 가난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불의를 변화시킬 수 없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합법적인 옹호와 사회 개혁 정책 등을 통해 부조리한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의’ 영역의 활동, 즉 거시적인 접근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두 가지가 상호 균형을 이루며 함께 진행될 때 비로소 세상을 복음적 가치로 변화시키는 흐름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우리 한국교회 청소년사목 현장에서는 복음적 시선 하에 지속적으로 봉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가톨릭 신자로서 왜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하는지, 또한 왜 그들을 옹호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청소년·청년들 스스로 신앙인으로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흐름도 잘 형성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거나, 아예 무관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복음적 시선 하에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 기여했던 1980년대 가톨릭 청년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청소년·청년사목이 세상을 복음의 가치로 변화시켜 나가는 사도를 양성하려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도 계속해서 교회란 본질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공동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공동체임을 일깨워줘야 한다. 그들이 봉사 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얻는 유익함을 경험케 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필요한 조직과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참여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몇 년 전 청소년사목 리서치를 위해 머물던 미국에서 ‘YTM’(Youth in Theology and Ministry)라는 청소년 양성 캠프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합숙캠프 형식을 통해 청소년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고아원·양로원에서 봉사하고 그 봉사 경험과 가톨릭 사회교리를 연결해 성찰함으로써 교리를 배우고 있었다. 이 캠프는 시의회를 직접 방문해 자신들의 봉사 체험에 기반한 제안이나 질문을 던지는 ‘시 의원과의 만남’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 즉 캠프를 통해 청소년사목의 여러 구성요소를 통합적으로 아우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 청소년·청년 사목 현장에서 흔히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는 것으로 미루게 되는 ‘정의와 봉사’의 영역까지 적극적으로 포함할 수 있는 아이디어, 보다 통합적인 시선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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