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젊은 수사님이 나에게,
“수사님, 요즘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 저에게 시간을 좀 내어 주세요. 머리 좀 식힐 겸 우리 함께 영화 보러 가요. 제가 보여 드리고 싶어요!”
아마도 연말, 연초에 연구소 결산과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입술까지 터진 것을 보고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왠지 모를 고마움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내용은 한국 현대사를 살았던 우리 시대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영화 내내 함께 펑펑 울었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 주인공의 대사 중에, ‘아버지 저 그동안 잘 살았지예! 그런데 사는 게 너무 힘들었심더!’ 이 부분에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되다 보니, 당시 부모님의 고생이 생각나서 그랬나 봅니다.
암튼 함께 영화를 본 후에, 극장에서부터 수도원까지 수사님과 걸었습니다. 영하의 겨울 날씨였지만 마음은 따끈따끈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젊은 수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수도원에서 한 달 용돈을 쥐꼬리만큼 주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리 거금을 써가며 영화를 보여 줄 생각을 다 했어. 정말이지 미안하면서도 고마워.”
“수사님이 요즘 바쁜 것 같아 쉬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사님이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했더니, 수사님 영화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여 드리면 좋을 텐데, 딱히 영화표를 구할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헌혈하면 영화표 드립니다’는 문구를 봤어요. 그때 문득, ‘헌혈을 두 번만 하면 표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어, 헌혈을 두 번 하고 받은 영화표로 영화 본 거예요. 수사님이 잘 보셨다니 저도 너무 좋았어요.”
아이고! 젊은 수사님의 말을 듣고 있는데, 좀 전에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것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울컥하고 나왔습니다. ‘지금 내가 본 영화가 결국 내 형제가 자기 피를 뽑아서 받은 영화표로 본 것이란 말인가!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나를 쉬게 해 주려고, 아…!’ 우리는 말없이 걷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나’라는 사람을 위해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 힘든 세상을 버티며 살아오셨고, 오늘은 또 내 후배가 또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이러저러한 생각에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토요일 오후, 젊은 수사님과 함께 수도원까지 걸어가는 발걸음, 걸음! 그 날따라 유난히 추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듯 차갑게 불어도, 아니 세상이 아무리 춥고 추워도, 햇살 한 줌이 이리도 고마울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함을 내 마음속에 건네주었습니다. 또한 힘든 내 인생!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긴장하고, 위축되고, 지치고 힘겨워 겨울 길을 쓸쓸히 걷어가는 듯 한 삶이 요즘 내 모습! 이러한 차가운 내 삶 안으로 내 소중한 형제가 햇살 한 줌을 소복이 담아 준 것 같았습니다. 수도원 앞,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어느새 내 눈물도 멎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수사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내 안에 담겨있는 햇살 한 줌, 누군가에게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나누어야겠습니다. 내 두 손 가득, 소복하게 담아 나누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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