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차기진(루카) 박사가 1845년 성 김대건 신부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훗날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주교) 일행의 정확한 조선 입국 장소와 강경 유숙지의 교회사적 의의를 연구한 한국교회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기진 소장은 이 논문에서 김대건 신부 일행의 입국 장소는 충남 강경 황산마을(현 강경읍 황산리)이라고 논증했다. 기존에 김대건 신부 일행의 입국 장소로 알려져왔던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입국 장소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인 「교회사학」 제11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의 1845년 입국 장소와 강경 유숙지 연구’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논문은 게재 심사를 거쳐 2014년 12월 31일 발행됐다. 차 소장은 논문 발표에 앞서 지난 9월 18일 충남 논산시 강경읍사무소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허(遺墟)와 19세기의 강경’ 학술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표를 맡았고 3개월 간 발표 내용을 보완, 수정해 이번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김대건 신부의 입국 장소로 나바위성지와 강경 황산마을 중 어느 곳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교회 내에서 여러 견해가 있어 왔지만 연구 성과를 학술적 논문으로 발표한 것은 차 소장이 처음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차 소장은 교회사 연구의 대부인 고 최석우 몬시뇰과 15년 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최 몬시뇰로부터 “교도권으로 교회사의 가부를 논하지 말고 연구의 객관성을 존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소개한 후 김대건 신부 일행의 입국 장소를 강경읍 황산마을이라고 규정지은 데는 ‘유일하면서 확실한’ 문헌 기록이 있다고 제시했다.
바로 1985년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지하 문서고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발견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이다.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에는 최양업 신부의 둘째 동생인 최선정(베드로)이 1886년 11월 3일 열린 김대건 신부의 시복 재판정에 나와 “…강경이 황산동네에 내리시며 주교와 신부 두 위를 모시고….”라고 증언한 내용이 명기돼 있다. ‘주교와 신부 두 위’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지칭한다.
차 소장은 최선정이 시복 재판에서 김대건 신부 일행의 입국 장소로 증언한 ‘강경이 황산동네’는 나바위성지와는 전혀 다른 장소라는 사실도 이번 논문에서 증명했다. 논문 발표에 앞서 차 소장이 집중적으로 보완 연구한 부분도 황산동네가 나바위성지와 직선거리로 불과 2km 떨어져 있을지라도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규장각 소장 1872년 ‘여산부 지도’에는 황산리와 나암리(‘나암’은 나바위를 뜻함)가 별도로 표시돼 있다. 또한 차 소장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기록을 보면, 이전까지 황산리와 나암리가 모두 여산에 속해 있다가 황산리만 강경에 편입된 사실이 확인돼 황산리와 나암리는 별개의 행정구역임이 입증된다”고 밝혔다.
차 소장은 김대건 신부 일행의 입국 장소가 나바위성지가 아닌 강경 황산마을이라는 논증이 담긴 논문을 발표하게 된 계기에 대해 “1985년 절두산성지에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을 발견한 후 나바위성지가 김대건 신부의 입국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매년 수만 명의 신자들이 순례하는 한국교회의 중요 사적지라는 점을 고려해 침묵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약 30년 동안 나바위성지에 ‘김대건 신부 일행 착륙지점’ 표지판까지 만들어지는 등 역사적 사실을 변질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바위성지를 본래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 소장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입국해 조선 내륙에서 첫 주일미사를 봉헌한 장소인 강경이 지니는 교회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성인 공경의 시발점이 되는 장소인 동시에 김대건 신부가 약 1개월, 페레올 주교가 2개월 이상 임시 사제관과 주교관에서 사목한 역사적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며칠 머물다 ‘스쳐 지나간 곳’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페레올 주교는 강경에 머무는 동안 중국에 있던 매스트르 신부와 당시 최양업 부제 영입 운동을 전개하고 선교사가 이동할 해로를 개척했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조선에서 사제로 활동했던 기간은 11개월로 강경에서 사목한 1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라 볼 수 없다.
차 소장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입국한 강경 황산마을을 새롭게 순례지로 조성하고 인근의 나바위성지를 아우르는 보다 넓은 범위의 통합적 성지 조성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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