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필자가 세례 받기 위해 교리를 배우고 있던 때의 일이다. 주말을 맞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필자만 보면 역정을 내셨다. “우얄라 카노? 남세스러워서 다닐 수가 있어야지. 휴~.” 빨리 결혼하라는 얘기였다. 당시 필자는 서른하고도 몇 살을 넘긴 때여서 동기에 비해 결혼이 늦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친지나 이웃 결혼식에 항상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설득형이었다. “남만큼 생겼고 키도 크고 직장도 있겠다, 니가 뭐가 부족하노. 셋째가 결혼할 처자가 있다고 하니 서둘러야 한대이.” 어머니는 한 가지 더 당부하셨다. “집안 내림으로 굳어지면 안 되니 꼭 니가 먼저 가거라. 알았제?” 작은아버지가 아버지에 앞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생각은 아버지가 그랬고 2대에 걸쳐 하게 되면 혹여 집안 내림으로 이어질까 염려스러웠던 것이었다.
그날은 결혼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로 사달이 나고 말았다. “어무이, 저 성당에 다녀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얼굴이 사색이 됐다. “뭐, 성당에 다닌다고. 너 신부될라꼬 카나? 결혼하기 싫어서. 너 이러면 안 된다.” 어머니는 버선발로 대문 앞까지 뛰어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말리셨다.
그리고 몇 년 뒤, 내림이 되더라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신 아버지의 결단(?)으로 셋째가 아들 둘을 앞세우고 먼저 결혼했다. 필자 역시 열심히 노력해 마흔이 되기 전 결혼했다. 어머니는 가끔 그때 일을 들추시며 말씀하신다. “그때 니가 결혼하기 싫어 신부되는 줄 알고 내 얼마나 가슴 졸인 줄 아나? 이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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