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딸 서영이가 서너 살 때쯤 일이다. 독서에 이어 신부님 강론이 끝나고 영성체할 시간이 됐다. 필자에 이어 서영이 차례가 됐다. 서영이는 신부님 앞으로 두 손을 쭉 내밀었다. 그러나 신부님은 서영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기도를 한 다음 끝냈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뜬 서영이가 손에 아무 것도 없자 신부님을 쏘아 보며 말했다. “신부님, 왜 제게는 과자를 안 주시는 거예요?” 순간, 영성체를 하기 위해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수백여 명 신자들 이목이 제대로 향했다. “신부님, 저도 주세요. 먹고 싶단 말이에요.” 그날 신부님은 그냥 빙그레 웃으셨다. 자리에 앉은 서영이는 미사가 끝날 때까지 분을 참지 못하고 신부님을 원망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서영이의 분은 가시지 않았다. “신부님은 어린아이라고 차별하시나? 왜 나에게는 안 줘? 엄마, 그 과자, 맛있어? 어떤 맛이야? 한번 먹고 싶은데?” 아내는 서영이에게 신부님이 성체를 주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던 서영이가 12살이 됐는데도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니 그 과자(?)의 맛을 알 턱이 없다. 그동안 주일학교를 다니는 등 성당을 다녔지만 교리 공부는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
필자 부부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서영이가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클라우디아’란 세례명도 정해놓았다. 10년 전 알고 지내는 신부님이 서영이가 세례를 받는다고 하자 정해준 세례명이다. 서영이가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처럼 예뻐서, 아님 성녀 클라우디아 삶을 본받으라고 정해 주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흔치 않은 세례명이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서영이가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성체의 감동과 뿌듯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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