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그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이라는 유화로 상을 수상한 후, 가톨릭 예술가 길드(Guild of Catholic Artists) 회장이자 조각가였던 린제이 클락(Lindsey Clasrk)에게 길드에 참여하도록 권유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에일즈포드(Aylesford)에 소재한 수도회로부터 <켄트: 에일즈포드 갈멜회의 역사 Kent: History of the Carmelites of Aylesford> 7개 패널과 세라믹 프로젝트의 하나인 <묵주 기도 길 Rosary Way>을 주문받았고, 이후 런던의 성 에이든(St Aidan) 가톨릭 성당 세라믹 벽화, 퀸 메리 대학(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성 베네(Benet, 성 베네딕토의 줄인 말) 채플 벽화 등 1953년부터 1970년까지 코소프스키는 대규모 벽화와 부조를 완성하면서 가톨릭 교회미술 작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다져갔다.
그의 작품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주문된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성 베네 채플 벽화를 주문한 곳은 국교회 소속 채플(대학부속 건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40년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된 후 새로 지어진 이 베네 채플은 퀸 메리 대학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부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건축 디자인됐다. 2014년 영국 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런던 이스트 앤드(East End)의 랜드마크가 된 이 채플은 독특하게도 원형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원형 채플 벽을 돌아가며 요한 묵시록의 내용을 7개 주제로 나누어 제작됐다. 또 각각의 주제와 주제 사이에는 복음사가들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와 묵시록의 저자 요한, 성 베드로와 바오로를 그려 넣었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그려진 이 벽화는 ‘스그라피토’(sgraffito)라는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는 서양의 건축 공예기법의 하나로 초칠도료가 마르기 전에 선각으로 긁어내는 방법이었다. 마치 파트모스 섬에 유배된 요한이 인간의 상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환시들을 상직적인 언어로 써 놓았듯이 벽화는 밤하늘을 도해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운 묵시록 판화처럼 보인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판화에서 본 듯한 네 마리 말과 기사(정복과 전쟁, 여성과 죽음을 상징하는), 아들을 낳은 여인을 위협하는 일곱 마리 용, 심지어 최후의 심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형상은 종말의 전형적인 형상들이다. 이에 반해 해와 달, 생명나무와 생명수, 희생된 어린양과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과 천국의 형상은 종말 가운데 존재하는 희망의 아이콘들이다. 하지만 이 벽화는 아수라장이 된 세상이나 잔혹한 악의 형상들마저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공포와 절망이 아닌 새로운 예루살렘을 찾아 떠나는 환상적인 비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코소브스키의 혜안(慧眼)은 박해에 처한 교회와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요한 묵시록이 대재앙과 파멸을 계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음을 이미 알았던 것일까. 채플에 들어선 나는 눈을 감고, 망각의 시간에서 나와 ‘오래된 미래’를 찾아나서는 평화를 얻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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