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에서 이벽의 「성교요지」등 초기 교회사 문헌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성교요지」를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윤 신부와 반대 견해를 가진 연구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본지는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성교요지」 연구의 새 전기 마련’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기고문을 싣는다.
지난 7월 24일 오후 3시 수원교구 교구청에서는 시복시성추진위원회(위원장 김상순 신부, 이하 위원회) 정기회의가 열렸다. 시복을 앞두고 그동안 노력해온 작업을 정리하며 초기 한국교회사를 튼튼히 할 ‘신앙 선조 관련 고문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립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출간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에 대해 논의했다. 윤 신부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된 ‘천주교 관계문헌’들을 연구했는데, 그동안 이벽(요한 세례자)의 작품으로 인정돼 온 「성교요지」에 들어있는 개신교 용어들을 볼 때, 이 작품이 1930년대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윤 신부의 저서가 이 분야의 선행연구들을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아울러 교회사 연구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 신자들이 교회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편, 윤 신부가 진행한 연구는 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작업들이 결여됐다는 평가가 있었다. 따라서 위원회는 초기교회사에 관해 보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철저한 작업을 거쳐 그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성교요지」 등 초기 교회사 자료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역사학적 비판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성교요지」 유통과정과 서로 다른 사본의 비교가 필수
1930년대에 필사본 「성교요지」가 출현해 고서적상들에 의해 거래됐고 개신교 용어들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위작으로 단정할 수 없다. 앞으로 원본의 존재여부와 그 원본의 진실성을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본의 진실성이 확정될 수 있다면, 이 책이 원본에서 필사된 시기, 전파 유통과정을 정확히 밝히고, 개작·탈루·수정 등의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윤 신부의 저서는 세 갈래로, 곧 세 종류로 전해 내려오는 「성교요지」의 각 사본을 분리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에 사료의 진실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미흡함이 발견됐다. 아울러 「성교요지」의 원문과 주석을 분리해 비판하는 일도 요구된다. 이는 원문의 저자와 주석의 필자가 다른 사람인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성교요지」 자체에 대한 철저한 사료비판과 분석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성교요지」를 인용한 교회사 논문이나 업적을 연구시기 별로 비교분석하기로 했다. 이는 「성교요지」를 인용했던 교회사 논문 연구결과들도 각각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연구 분위기나 사학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교요지」는 이벽이 「천학초함」을 읽고 지은 글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성교요지」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성교요지」와 「천학초함」에 대한 내용, 표현에 대한 비교는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작업이다.
위원회는 「천학초함」에 실린 「천학실의(天學實義)」, 「칠극(七克)」, 「직방외기(職方外紀)」 등 10편의 책을 「성교요지」와 비교하는 공동연구 작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위원회는 이 모든 일이 선행돼야만 초기 교회사연구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중간보고회는 올해 10월 말경에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통해 발표하기로 했다.
천주교를 신앙으로 연 이벽, ‘사학괴수’로 몰려
성 다블뤼 주교는 「조선순교사비망기」(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ee)에서 이벽을 천주교회의 시작을 마련한 사람으로 서술했다. 또한 1801년 황사영의 ‘백서’, 이승훈이 1789년 북경의 북당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의 「중용강의보」(1814년) 등 이벽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그에 관한 자료를 남겼다. 이외에도 이기경의 「벽위편」(1801년 경), 1801년 전후의 「추안급국안」과 「사학징의」 등은 물론「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관찬사 서류도 이벽이 수행한 교회 활동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와 달레 신부도 이벽의 활동에 대해 기록했다.
따라서 이벽의 교회 활동이 「성교요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교요지」가 이벽의 저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벽의 교회활동을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설사 「성교요지」가 1930년대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 작품은 1930년대 당시 유교사회를 살던 학자가 천주교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밝혀줄 것이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들은 윤 신부의 연구 결과는 초기 교회사의 자료와 인물에 대해 새로운 연구의 계기를 촉발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열린 공동연구’를 통해 당시의 영성을 본받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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