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부모님 생활비도 보태며 살았습니다. 환경도 다르고 시간도 없다 보니 다른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거나 여행을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그나마 제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할 수 있는 성당 때문이었습니다. 취업 후 대도시로 나오게 되었는데 직장생활 안에서 힘이 들 때마다 저는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에게 직장 동료 한사람이 현실도피를 위해 성당을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조금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제 신앙생활이 현실도피인가요?
대답입니다
대인관계에도 더 관심을 두세요
제가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보람되고 기쁜 시간도 있었지만 때로는 힘든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비록 잠시라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피할 수 있는 ‘안식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새까맣게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시험 전날에도 영화를 세 편이나 연달아서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처’가 어느 순간에 ‘도피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교우들에게 ‘안식처’와 ‘도피처’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늘 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기준점은 현실과의 대면 여부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곧 현실과의 대면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냐 아니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냐.
건강한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들 가운데 ‘현실도피’의 측면이 있습니다. 간혹 일부 건강하지 못한 종교나 신앙인들에게서 극단적인 도피형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가정을 떠나고 직장을 버린 채 자기들만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사이비 종교와 진정한 종교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이곳에 오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어려움을 주는 일상과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종교는 오히려 제 십자가를 지라고 말합니다. 곧 가정과 세상의 어려움을 벗어던지고 달아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대면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차원에서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어려움들로부터 도피할 목적으로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 반복되고, 그렇지 않았을 때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커지게 되면 이때의 신앙은 현실도피적인 형태가 되면서 마약, 술, 도박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형태의 종교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무시당하게 됩니다.
자매님의 경우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신앙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것 자체만으로 자매님의 신앙을 현실도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직장 동료가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봐서, 자매님께서 다른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나 감정적인 관계가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석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인관계 측면에서 소홀하게 했던 부분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물론 과거에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서 사시느라 좋은 관계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방법에 있어서도 서투를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께는 그런 수고로움이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자매님! 신앙은 단순히 하느님과만 맺는 둘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 항상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이 자꾸만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신앙은 건강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문의 : 이메일 info@catimes.kr 을 통해 김인호 신부님과 상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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