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경대목구장을 지낸 우빈(于斌) 추기경(1901~1978)이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최기영 교수가 14일 오후 2시 서울 저동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주최한 연구발표회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최기영 교수는 “우빈 추기경이 한국 독립을 도왔다는 기록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발간한 ‘신한민보’에서도 종종 발견된다”며 “우빈 추기경은 미국에 가서 항일전쟁의 지원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우빈 추기경이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학계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우빈 추기경은 1940년 9월 17일 중경의 가릉빈관에서 개최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해 한국인들과 공식적으로 첫 만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날 축사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정의와 공정함이라는 하느님의 2대 진리와 맞서 싸우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야심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11월 11일 중경의 한 음식점에서 우빈 추기경은 이튿날 서안으로 총사령부를 옮기게 된 한국광복군 송별연을 주최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이 자리에서 ‘정의사자’(正義使者) 넉 자가 수놓인 비단깃발을 우빈 추기경에게 건넸다. 김구 주석은 해방 후 1945년 12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우빈 추기경을 ‘조선 독립의 숨은 은인’으로 술회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우빈 추기경은 한국인과 임시정부를 항일전쟁의 동지로 인식하고 여러 방면의 지원을 했지만 이것은 한국천주교회나 교인을 매개로 한 것이 아니라 추기경 개인의 활동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평했다.
우빈 추기경은 1928년 사제품을 받고 1936년 35세에 남경대목구장 주교로 임명된 후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추기경에 서임된 인물이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1954년 4월 첫 방한 이후 모두 다섯 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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