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잠깐 쉬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며칠 동안 먹지 못해 허기진 사람들처럼 허겁지겁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여댄다. 강의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고요함 속에서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는 백여 명의 대학생들의 모습. 마치 공포영화에서나 봄직한 영혼 없이 살아가는 좀비가 연상된다.
“자, 이제 수업 시작합시다!”
학생들은 마치 몇 년간 사귀었던 연인과 고별식이라도 하듯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겨우 스마트폰을 놓으면 공허한 눈빛을 보내온다. 그래도 스마트폰과 열애하는 어색한 이 풍경을 이상하게 봐서는 안 되겠지. 스마트폰은 어느덧 우리들의 분신으로 인격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어쩌겠어. 나도 너도 모두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했잖아.”
“이게 대세야. 여기에 태클 걸으면 꾸진 사람 되는 거지.”
그렇다. 이제는 어색하지 않고 익숙해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아빠는 텔레비전 뉴스를 그리고 엄마와 딸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도,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을 스마트폰에게 먼저 ‘알현’시켜도, 전철과 버스를 탔다하면 뒤뚱거리면서도 스마트폰을 먼저 꺼내도, 거리에서 공원에서 앉으나 서나 걸으나 이웃세상보다 스크린 세상으로 빠져 들어도, 회의나 대화를 할 때에 함께 있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속 사람에게 먼저 달려가도,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히기보다 ‘나’만을 향한 셀카가 더 친근하고 자연스러워도,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어색하지 않다. 그냥 누구나 다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런 우리의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점차 설자리 없어 잊히고 있다면? 너무 과민하다고?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에 빠질수록 우리의 뇌구조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제치고라도, 우리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나? 스마트폰이 우리를 인내하지 못하게 하고 생각을 얕게 하며 성찰의 힘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아니라도 말이다.
집중력과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지루하고 느린 것을 못견뎌하지 않나?
도구사용이 필요보다는 중독적 욕구와 재미에 더 빠져들게 하지 않나?
그리고 이러한 반복되는 욕구로 인해 ‘더 많이’ 바라지만 ‘더 많이’ 배고픈 증세를 알아채고 있는가? 젊어서도 늙어서도 아닌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쉽게 잊고 기억해내지 못해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져도 “어쩌겠어. 세상이 다 그런데”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가? 때로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사람이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나는지, 나비가 사람이 되어 걸어 다니는지 혼란스럽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사람만이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주는 편리한 도구를 포기하라는 건 아니다. 한번 익숙해진 현대기술을 뒤로 물릴 수 없다. 다만 묻고 싶을 뿐이다. 묻지 않으면 답도 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한 우리들의 디지털, 정말 괜찮을까?라고 물으면서 ‘알아차림’의 여정에로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그리하여 무엇이 허상인지 알아채는 순간, 무엇이 행복인지 드러날 수 있기를, 무엇이 구속하는지 알아채는 순간, 무엇이 자유롭게 하는지를 찾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는 매일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의 결과물 그 자체”(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실을 매 순간 알아차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계속 묻겠다. 우리들의 디지털환경, 정말 괜찮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