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도원 저녁 시간에 형제들과 식사를 하는 도중 이런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00분원에서 살고 있는 그 형제네 집안이 거의 재벌 수준이래!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한 채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하더라.”
“그 형제, 의사가 되기 직전에 성소에 대한 열망으로 이 삶을 선택했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 형제와는 함께 생활해 본 적이 없어, 형제들이 말하는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믿었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그 형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인사를 나누다가 내가 물었습니다.
“형제는 수도 생활이 많이 힘들지?”
“아뇨, 너무 좋은데요. 살면 살수록 기뻐요.”
“야, 형제는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수도원 안 들어왔어도 행복하게, 기쁘게 잘 살 수 있었을 사람인데! 그래, 그 마음 잘 간직하며 우리 함께 잘 살자꾸나!”
“아닌데! 저는 수도원 안 들어왔으면, 그냥 이것도 저것도 안 되었을 거예요!”
“그래도 집에 재산도 많고, 의사로 살았으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는 있잖아!”
“아이고, 재벌은 무슨! 신부님도 저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구나!”
“응, 재벌 아들에다가 의대 공부를 끝내기 직전 수도원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러자 그 형제는 박장대소를 하며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부님, 예전에 수도원에 들어왔을 때 입회 동기 형제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리 집에는 오래된 큰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가을이 되면 그 나무에서 감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식탁에서 부풀려져서, 우리집이 예전에 강남에 거대한 감나무 밭이 있었고, 서울이 개발되면서 어마어마한 땅값을 보상받았다는 이야기로 둔갑이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우리집에 가정부, 정원사, 운전기사가 있었고, 가정교사도 있었다고 이야기가 지어졌어요. 그리고 제가 의사되기 직전에 수도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들으셨죠? 사실 그 이야기는 제가 수도원 들어오기 전에 의사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누나의 권유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와전이 된 거예요.”
“그래? 그런데 형제의 이야기가 그리 퍼지게 되면 마음 상하지 않았어?”
“에이, 마음이 상하긴요!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 끝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재밌는 소문은 식탁에 즐거운 대화 소재도 되기도 하고요!”
우리 주변에는 소문에 민감한 사람도 있고 무딘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성격 차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소문의 특성상 자기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문 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타인 안에서 즐거운 소재가 됩니다. 잘 다루지 못하면 상처의 근원도 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 안에서 즐겁고 기쁘게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소문도 즐겁고 기쁜 방향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소문에 대한 현재의 반응, 어쩌면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과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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